화의 잔상에 대하여

불꽃과 재 사이

by Serenitas

어제도 나는 화를 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오늘은 마음의 여유를 갖자’고 다짐했건만,

오후가 되자 그 다짐은 종이컵 커피보다 쉽게 식어버렸다.
한 마디, 한 표정이 내 안의 작은 용암을 끓게 만들었고,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 순간의 나는, ‘정의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다음이다.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정의의 화신이었던 나는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왜 내 마음을 제어하지 못했을까.
그때의 불꽃은 이미 사그라지고,

남은 건 텅 빈 회색 하늘 아래 홀로 떠 있는 재뿐이다.
아침이 되면, 상황은 다시 평범한 하루의 한 장면으로 축소되고,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가끔은 내 마음을 이렇게 되돌아보는 시간이 오히려 더 쓰라리다.
화났던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어쩐지 작아지고, 말없이 자신을 다그친다.


이상한 건, 그때는 정말 화낼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상대의 말투, 상황, 분위기—모든 게 내 감정을 정당화해 주는 듯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면, 그 근거들은 마치 꿈처럼 희미해지고,

남는 건 묘한 후회뿐이다.
그 순간의 ‘분노’는 불꽃놀이 같다.

화려하게 터지고 나면, 공중엔 연기만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여유는 늘 내일로 미뤄지고,

오늘의 나는 작은 일에도 울컥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라는 걸까.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까.
가끔은 스스로를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참다못해 다시 화를 내는 내가 야속하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화가 나는 순간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다만 이제는 그 불꽃을 조금 더 다스리고,

오래 타지 않게, 조용히 흘려보내고 싶다.
그렇게 한다면, 후회도 줄고 마음도 조금 더 평온해질 테니까.
언젠가는 순간의 분노 대신, 잔잔한 미소를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미소는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남에게 건네는 작은 평화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미래를 잃어버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