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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05. 2018

동화마을 할슈타트로 가는 길[1]

딸과 함께한 유럽 배낭여행-할슈타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나중, 나중으로 귀농을 미루다 포기한다고 하지만 난 거꾸로 아이들 교육 때문에 서울에서 귀농했다.

그리고 교육에 자신이 있기에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귀농했을 때 아이들이 어렸지만 그때부터 죽으라 여행을 다녔다.

최소한 일년에 한 번씩은 다른 나라를 경험했고, 국내 여행 또한 틈나는대로 그것만이 살 길이라는 듯 거덜난 집구석처럼 쏘다녔다.     

페르시아의 어느 시인은 “내게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한 닢으로는 빵을 사고, 다른 한 닢으로는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고 했듯이 나 또한 한 닢으로는 아이들의 영혼과 정서, 창의력을 위해 책과 여행, 자연에 몰빵했다.     

그렇게 성장하여 청춘이된 아들은 책에, 딸은 여행에 관심이 많다.

그런 딸이 유럽배낭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콧구멍에 바람이 들었는지 엄마와 유럽배낭여행을 가고 싶단다.

먼저 다녀와 보니 엄마생각이 간절했다고...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150번 버스를 타고 바트이슐역으로 가야 한다.)


자기 여행경비는 알바해서 벌겠다는 말도 부록처럼 덧붙였다.

지금껏의 유럽배낭여행도 알바로 번 꼬깃꼬깃한 돈으로 다닌 딸이니 어련할까.      

장기간의 유럽배낭여행이었지만 일정을 짤 때, 난 딸에게 네 가지 부탁을 했다.

여행 동선에 내가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를 넣어달라는 것과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나머지 여행일정은 딸과 함께라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할슈타트...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잘츠카머구트에 속한 호수마을이다.

독일에서 많은 날을 여행하고 잘츠부르크에서도 몇 날을 보낸 터라 조금은 에너지가 하향곡선중이었지만 다음 행선지가 할슈타트라는 사실만으로도 떨어진 당을 올리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할슈타트를 당일 코스로 잡지만 딸은 할슈타트에 대한 엄마의 탱천하던 기세를 미리 알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할슈타트로 가는 날은 비가 왔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여행을 뒤로 하고 할슈타트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숙서에서 창을 열고 팔을 뻗어보니 비가 온다.

이동하는 날 비가오긴 첨이다.

여행기간이 길수록 캐리어의 짐은 늘어갔으므로 평소에는 책과 연필 등의 간단한 일용품만 넣던 배낭에도 짐을 많이 우겨넣었다.

여행기간이 길어질수록 짐을 싸는 데 이골이 났다.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바트이슐(bad ischl)역에서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할슈타트역까지 가야 한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그런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가 와서 창밖의 모든 풍경들은 안개를 머금고 있었다.

풍경을 건드리면 바로 물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동하는 동안 차창으로 신이 선물한 보석들이 널려 있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공허하지 않다. 목적지에서의 행복만이 아니라 여행기간내내 오감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선하니까.   

한참을 달렸을까.

귀가 막혔다 뚫렸다를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 해발이 높이지고 있고, 창밖으로 케이블카도 지나다니는 것으로 보아 내려야 할 곳이 멀지 않음을 감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할슈타트로 가늘 길은 험난했다.

우선 문제가 생긴 곳은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바트이슐역에 내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단이 난 것은 그 때였다.

바트이슐역에서 다시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티켓을 사야 한다.

딸은 티켓머신에 카드를 넣고 티켓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티켓이 나오지 않자 사색이 되었다.

서두르다가 기차표가 나오는 곳에 카드를 집어 넣은 것이다.

여지껏 능숙하게 해오던 딸은 자기도 왜 거기에 넣었는지 모르겠다며 얼굴이 하얘졌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라는 말을 반복하는 딸.

딸은 역무원에게 사정이야기를 했고, 돌아온 대답은 이 기계를 관리하는 회사 직원이 오려면 삼사일 걸린다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주말이 끼어 있어서...     

문제는 그 카드에 우리의 남은 여행경비가 거의 다 들어 있고, 더 문제는 나머지 여행일정의 모든 기차며 숙박예약 등이 그 카드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고, 만약 이러는 동안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를 놓친다면 숙소 등 난감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딸은 거의 혼이 나간 상태였고, 역무원 아저씨와 상의하는 동안 난 개입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이럴 때 개입하면 아이는 더 당황하고,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흐릴뿐더러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겨도 또 혼자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입 다물고 있는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한 발 옆에 물러 서있을 때 딸이 내게로 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했다.     

내가 딸에게 처음 건낸 첫 말은 “누구나 실수를 한단다. 이럴 때 침착하게 네가 보인 행동이 정말 대견했단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딸의 좁아졌던 미간이 펴졌다.


우선 한국에 전화해서 카드를 중지시키고, 아빠에게 전화해서 나머지 카드로 여행경비를 더 보내달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가진 돈으로 할슈타트로 가는 표를 샀고, 기차는 청춘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오지 않고 저만치서 기다렸다는 듯 바로 도착했다.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딸은 내 손을 잡으며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감동이라고 했다.

한밤중에 전화를 받으신 아빠도 첫 마디가 “괜찮아, 괜찮아. 다른 일은 없고?”였다고...

남편은 우리가 보내달라는 돈보다 몇 배 더 많은 돈을 보내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청춘인 딸에게 보내는 응원이었으리라.

다 괜찮으니 힘내라는....

    

긴장하여 차가워진 딸의 손을 녹여주며 말했다.

‘딸아, 왜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겠니? 어른도 실수를 하고, 넘어지고 깨진단다.

실수와 실패를 먹이로 나이를 먹는 거란다.엄마도 엄마의 길을 가면서 지금도 넘어지고, 깨진단다.’

딸은 빗방울처럼 맑은 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할슈타트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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