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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25. 2018

난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게 좋더라.

귀농아낙의 소꿉놀이-리폼

아들이 제대를 했을 때, 학기 시작하기 전까지 산골에 있었다.

자기 방에서 실컷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단다.

아들은 책을 좋아했고, 군대에서 그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없어서 힘들어 했다.

부대 화장실에서도 보는 등  틈틈이 읽은 책 목록을 보니 대략 130권이었다.

군대 도서관에 있는 책도 봤지만 휴가나올 때마다 한 짐씩 사들고 들어가서봤다.

아들이 휴가나오면 강남교보에서 함께 책 사는 일이 필수 코스였다.

군대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적어와 고르던 아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들은 책으로 인해 군복무중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책은 그런 것이다.

힘든 중에도 호롱불과 같은 것...

그런 아들이 제대하고 밤 늦도록 책을 읽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 너무 좋아."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곳은 지역 특성상 '상근'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집에서 부대로 출퇴근하며 군복무를 마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아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상근으로 간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상근으로 갈 정도다.

남들은 다 부러워했지만 상근을 마다하고

아들은 현역으로 가겠다며 지원해 갔다.

훈련소에서도 울진으로 원하면 보내주겠다고 다시 한번 의사를 물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고 했다.

그게 대견하고, 미더웠다.


아들 군대보낸 엄마 마음이야 다 똑같을 것이다.

훈련이 힘들까봐 걱정이 아니라

마음고생, 자유롭지 못함, 각종 사건, 사고 등등

그런 것 때문에 속을 끓이고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부모심정 말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늦은 밤,

쏟아지는 별을 보며 그저 건강히, 탈없이 제대하기를 얼마나 빌었던가.

그리고 제대..

난 생각했다.

아들 군대보내고 나서 나도 많이 숙성된 것 같다고...

마음이 건포도처럼 되었던 그 시간들로 인해 좀더 깊어진 것 같다고...


서론이 길었다.

제대한 아들이 휴지통이 필요하단다.

아들 방의 휴지통을 그가 군대가고 리폼작업실에 갖다 놓고 썼기 때문에 없었다.

사주겠다고 했더니

"난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게 좋더라."하며 환하게 웃는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솜씨는 없지만 마음을 담아 만들기 시작했다.

자로 재고, 톱질을 하고, 못질을 하고...

내 리폼의 기본은 있는 자재로 만드는 것이라

일단 집에 있는 재료를 둘러 보았다.


이웃집 지을 때 쓰다 남은 무늬 합판을 얻어 놓은 게 있었으므로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뚜껑을 안열고도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뚜껑 가운데를 비워두기로 했다.

그리고 색상은 이제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바다색 계열로 정했다.

각 면마다 냅킨 아트를 붙여 밋밋함보다 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잡이를 달아 완성했다.

리폼은 그것을 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염원을 담을 수 있는 작업이라 참 뿌듯하다.


아들은 너무 이쁘다며 한껏 칭찬을 해준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표 휴지통이라며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본다.

그러면서 "엄마도 같이 군대생활한 거나 마찬가지지. 엄마 고생했어."라며 꼭 안아준다.

이제 세월이 흘러 아들은 마저 대학을 마치기 위해 서울에서 생활중이고,

난 가끔 아들방에 들어가  휴지통을 열었다 닫았다 해본다.

그게 나의 그리움 희석법이다.


산골에도 봄이 오고 있다.

개구리 소리도 점점 똘망똘망해져가고 있고,

골짜기마다 얼었던 대지가 풀리면서 개울물 소리도 여물다.

아들을 훈련소에 들여 보내고 왔을 때,

흐드러지게 피었던 생강나무꽃이 필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생강나무꽃...

눈에 보이는 사물과 현상은 원하든, 원치 않든

나를 추억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에 기쁨도 주지만 가끔은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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