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동분 소피아 Mar 18. 2019

당신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갖고 있는지요?

바람은 천성이 다소곳하지 못하다.

다소곳하거나 정막이면 그건 이미 바람이 아니다.

바람은 누군가와 놀아나야만이 그 존재가 더욱 두드러진다.

혼자서도 잘 노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는 존재감은 떨어진다.

처마밑의  풍경과 놀아나거나, 나뭇잎과 놀아나거나, 하얗게 빨아넣은 빨래와 놀아나는 바람...

하다못해 불과 놀아나서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바람이 밉살스러워 보이지만 가을들녁에 치를 까부르는 아낙에게 바람은 고마운 존재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줘야 알곡은 알곡대로 죽정이는 죽정이대로 자연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바람은 이처럼 양면성을 갖고 인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조대로 산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누군가와 정신없이 함께 해야만, 어떤 무리 속에서 존재감을 드높여야만 그 사람의 존인간관계가 좋다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다못해 인싸(insider), 아싸(outsider)라는 말까지 유행할까.


그러나 난 젊은이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혼자서도 잘 놀줄 아는 사람이 삶을 더 윤기나게 산다고 생각한다.

"따로 또 같이"의 경계가 있어야 한다.

혼자서도 잘 놀줄 아는 사람이 무리에 섞여서도 잘 논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이다.

우리는 남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익숙한데 나와 마주하는 시간은 대략난감해 한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는 열을 올리는데,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 데에는 인색하고 어색해 한다.


남이 나에게 칭찬하는 것에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면서, 내가 나에게 칭찬하는 일은 가뭄에 콩나듯하다.

남에게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나에게는 언제나 후한 변명이 따라붙고 너그럽다.

남을 알려고 기를 쓰면서 나 자신을 아는 일에는 소홀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버리는 시간, 헛된 시간이 아니다.

기계도 점검시간이 필요하듯 사람도 자신을 점검하고 구리스를 발라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점검시간은 산사의 죽비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작은 공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에 충실할 수 있는 인테리어를 꾸미는 게 유행이라고 들었다.

그 공간이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본다.

빈틈없이 이등병처럼 각잡고 살다가도 자신만의 '방'에서는 허물어지고, 나사 하나 정도 빠진 사람처럼 느슨한 여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혼자만의 시간에 나와 마주앉아 스스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꿈을 꾸는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불안이나 조급함을 찾기 어렵다.


그대는 지금 "따로 또 같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상사화, 네가 아프니 나도 아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