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고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비가 온다.
그 비가 집 앞 도랑으로 빨려 나가고 작은 개울을 거침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 집 비포장 도로 끝나는 작은 다리 밑에 가보았더니 나보다 먼저 도착한 빗물의 모임들이 벌써 내를 이뤄 한 목소리한다.
그것이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리.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제구실을 한다.
바다에 가면 시끄러운 이유가 여기 있나 보다.
각자 자신이 떠나온 산골짜기의 사연들을 모두 듣고 와서는 바다에 토해내니 그리 시끄럽고 드셀 수밖에.
세상의 온갖 못 볼 일, 듣지 못할 일들을 다 듣고 오니 바다는 또 그리 가슴에 멍이 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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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산골로 귀농하고 나서 신이 난 쪽은 아이들이다.
도시에서처럼 학원 다니지 않아도 되고 공부 많이 안 해도 되니 좋단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이들이나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걱정 어린 듯 묻는 말이 있다.
"애들 교육은 어때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30명이다.
3학년인 아들 선우네 반은 12명이고, 1학년인 주현이네 반은 5명이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교실에서 4~5명씩 마주 보고 앉아 두 학년이 같이 공부한다.
우리가 사는 마을 입구에 분교가 있는데 학생 수가 적어 폐교되었고 대신 거기까지 스쿨 갤로퍼가 온다.
학교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선생님과 학생이 그저 식구처럼 지낸다.
학원은 눈 씻고 봐도 없고 굳이 가야 한다면 울진읍까지 불영계곡을 따라 50분 정도 가야 하지만 학원에 보낼 일이 없다.
논과 밭, 개울에서의 고개 잡기, 개집, 닭장이 선우, 주현이에게는 학원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것저것 묻고 논이나 밭에 데리고 가 아이들에게 걸맞은 일거리도 배분해 주곤 한다.
도시에 있을 때에도 책은 잘 읽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더 잘 본다.
요즘은 만화 삼국지와 위인전에 푹 빠져 있는데 만화를 허용한 지는 1년 되었다.
만화는 내가 충분히 읽어보고 선택해 주고 있고, 아이들의 책 읽기에 고명처럼 가끔 얹어주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와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이것이 책 읽기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생각이 서로 다름을 배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골 교육의 주 무기인 여행이 있었다.
열심히 농사지어 주어진 돈으로 한 나라, 한 나라의 속으로 들어가 삶을 배우고, '세계 속의 나'를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시골학교라 숙제도 일기밖에 없다.
이사 온 후 지금까지 TV 안테나를 부러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TV 앞에 앉아 헛시간 보낼 일도 없다.
처음엔 답답했는데 지금은 아주 좋다.
사실 긴 겨울을 산골에서 아이들과 어찌 지내나 고민을 했었다.
자연 앞에선 너그러운 남편이 밭 언덕에 자연 눈썰매장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은 퇴비 봉투를 하나씩 들고 나서면 점심때 불러야 들어온다.
작년에 눈이 바쳐 주었으니 아이들 얼굴은 여름보다 더 시커먼스.
엄마도 타보라고 하도 권하기에 애들 사기 차원에서 앉았다가 "누가 나 좀 말려줘요~~~~"하고 소리소리 질렀으나 이 산골에서 누가 말려주랴.
결국 가시오갈피 나무 몇 그루를 아작 냈다.
그런 급경사를 애들은 잘도 탄다.
그 덕에 두 놈이 내 부츠 두 켤레를 고스란히 분리수거장으로 보냈다.
겨울의 공부 종목은 또 많다.
가끔씩 남편은 "우리 영토에 누가(노루, 멧돼지 등) 침범했나 가보자"며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갔다 온다.
눈이 어른의 허벅지까지 쌓인 산비탈 밭으로...
아비는 노루 등이 눈 때문에 먹이 찾으러 내려왔나 먹이 걱정에 간 거였지만 아이들은 정말 진지하게 침입자를 찾는다.
정월 대보름이면 아빠와 쥐불놀이를 하기 위해 같이 깡통을 만들고 불을 피워 넣어 밤이 새도록 깡통 돌리기도 한다.
그뿐인가.
메주 만드는 틀에 눈을 넣어 벽돌처럼 찍어내어 이글루를 만드어 노는 모습은 진지하기까지 하다.
여름이 되었다.
한국의 알프스라고 자랑하는 불영계곡 상류가 내 터전이니 그냥 나서기만 하면 수영장이고 놀이장이다.
나를 아는 친절한(?) 이들이 "애들 공부 걱정 안 하세요?"라며 염려해 주지만 이제는 자연과 어떤 공부를 할지 눈에 선하다.
언제 다시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들이 자연을 더 많이 느끼고 자신의 맑디 맑은 눈에 이 자연의 아우라를 빈틈없이 넣어 성인이 되어 마음이 건조하고, 팍팍할 때, 조금씩 꺼내 쓰기를 바란다.
칼릴 지브란 말마따나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줄 수는 없듯이 아이들이 자연에서 많은 생각을 얻고 맑히기를 바란다.
선우는 손님 오는 게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오는 사람마다 같은 내용을 물어보니까 그렇단다.
"너는 이 시골이 좋으니? 왜 좋은데?"
뭐 이런 장르의 질문 때문이란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배운다.
하늘, 구름, 시냇물, 논과 밭, 해님, 개구리 친구들이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산골로 돌아오기를 더 기다린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면 그 친구들이 내 대신 번갈아 마중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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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들과 앵두를 땄다.
바구니를 하나씩 팔에 걸어 주었더니 잘도 딴다.
한참 후에 보니 바구니 바닥에 겨우 한 겹 엎드려 있는 게 다였다.
"앵두 다 어디 갔니?"
"엄마, 우리가................."
하며 웃는데 입가에 빨갛게 앵두 물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색처럼 아이들 가슴도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이 앵두로 발효액을 담가 맑디 맑은 유리잔에 넣어주면 아이들은 고추잠자리와 한 모금씩 나누어 먹겠지........
산골에서 배 동분 소피아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