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거름이 씨를 말렸구나.

박 씨 일가의 소행인 줄도 모르고...

by 배동분 소피아

요즘은 시골길 곳곳이 다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그래서인지 '소달구지 덜컹대는 시골길'이라는 표현이나 모습은 옛날 사진에서나 봄직하다.

어쩌면 소달구지가 뭐지 하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소를 보기도 힘든데 달구지까지 본다는 건....


다행히 우리 오두막으로 올라오는 길은 100미터 정도가 비포장 도로이다.
한쪽 산을 깎아 만든 길인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 길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면

'아, 내가 저 모습을 보려고 귀농했지...'하며 입가에 찔레꽃 같은 웃음을 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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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툇마루에 섰는데 그 길로 걸어 들어오는 하굣길 아이들의 모습이 나의 째진 눈에 들어왔다.

눈을 하늘에 헹구고 다시 볼 정도이다.

그이와 약속했다.
저 길은 되도록이면 비포장길로 놓아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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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초등학교 때, 방학만 되면 무엇인가에 끌리듯 시골 할머니 집으로 내달렸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앞마당에 들어서면 오색의 현란한 꽃들이 제일 먼저 와서 안기곤 했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서울에서 공부시킨다며 다 데리고 가면서도 늙으신 부모님이 걱정되어 둘째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에 부러 두고 왔었단다.

그래서 나의 둘째 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를 서울로 모실 때까지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발레를 잘 했던 언니인데 그 꿈을 잇지 못해서 그 생각을 하면 둘째 언니에게 미안타.

그 언니가 서울에서 동생들 온다고 할머니와 꽃밭을 매년 그렇게 아름답게 꾸며준 탓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까지 그 촉촉한 정서로 건조하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서 우리 산골 아이들에게도 동요 가사처럼 '꽃밭 가득 예쁘게 과꽃'을 보여주려고 앞마당에 큰 꽃밭을 만들었다.

작년에 받아둔 씨앗이 별반 없는 탓에 과꽃, 봉선화, 나리꽃, 채송화, 홍화 등을 고루 뿌렸다.
요즘 한창 한두 송이씩 시샘하는 듯 타는 가슴을 터뜨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밭 전면에는 머리 내미는 것이 없었다.

'이상하다. 앞면에 더 예쁜 꽃을 키까지 고려해가면서 고루 뿌린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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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설 때마다 이렇게 옹알이를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그 이유를 오늘 발견했다.

주범은 박씨 일가!
아비나 아이들이나 기회만 있으면 꽃밭에 대고 노상방뇨를 하는 바람에 그만 씨가
말라죽은 것이었다.

그곳에 꽃씨가 들어앉았으니 고맙게 거름은 안 줘도 된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했었다.
도시 같았으면 노상방뇨는 5만 원 벌금은 족히 내야 했을 터이지만 난 산골 아줌마로 마음이 넉넉하니 경고로 끝냈다.


그러나 버릇은 못 고친다.
결국 꽃밭이 뒤에만 예쁘게 꽃이 피고 앞면엔 기계충 앓은 듯 머리털 한 가닥 한 가닥만 남듯 그리 되었다.
내가 박씨 일가를 불러다 놓고 그 상황을 직접 확인시켰는데 요즘에도 착실하게 뜨거운 거름을 주고들 있다.


내가 못 살아...
그렇게 된 데에는 내 탓도 있다.
귀농하고 한동안을 박씨 일가는 그냥 마당 한 편이나 길 한쪽가가 에다 대고 뜨거운 거름을 주는 거였다.

"당신 농부 맞아? 그 아까운 거름을 길바닥에 쏟아 버리다니...."
그 날 이후 꽃밭에 거름을 주려고 그리 했다니 나 또한 별반 할 말을 잃을 수밖에.

꽃밭을 볼 때마다 아쉬워 오늘은 대머리에 머리카락 이식하듯 꽃 이식을 했다.
앞에만 호미로 골을 파고 아이들 줄 세우듯 홍화와 봉선화를 옮겨 심었다.

꽃도 자리 텄을 하는지 며칠 몸살을 앓더니 그만 황달이 들었다.
한 밭 가득 이식하려던 욕심을 버리고 그대로 두었다.
식구들 눈요기하자고 녀석들 자리텃하는 걸 볼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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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고 하더니 별들이 슬리퍼 신고 마실 나온 걸로 보아 비 오는 것도 글렀다 싶다.
남편이 내일은 야콘밭에 풀 뽑자고 한다.
오늘까지 고추밭 풀 뽑았는데 종목을 좀 달라하지 며칠을 한 종목만 하니 싫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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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너무 진지하고 열심인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을 봐서라도 나의 주특기인 김매는 일을 충실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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