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야, 노루야 뭐 하니?
다른 계절엔 쥐 죽은 듯이 살고 있다가 가을걷이 때가 되면 앞 논에 먼저 나와 앉아있던 꿩 부자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째서 부자인지를 알았느냐며 남편이 물었을 때 그저 느낌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궁한 대답을 했었던 기억도 났다.
사실은 나름 어른 꿩과 애기 꿩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려와 앉는다는 사실을 몇 번 보고는 그런 생각이 굳어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기도 애매한 구석은 있었다.
내가 뭐 산골에 들어와 도를 닦아 그런 것 깨나 감잡을 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어미는 딸을 가까이에 끼고 모이를 거두는 법을 알려주지, 아비와 아들처럼 사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라는 뭐 얄팍한 나의 고정관념이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부자지간이든, 모녀지간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무거운 몸을 불안하게 공중에 날리며 공중곡예를 거뜬히 보여주던 그들이 어디에서 둔한 몸을 돌아 눕히는지 궁금하다.
혹여 감기에 걸린 것은 아닌지.
생각 없이 논에 나갔다가 후다닥 날아가는 바람에 날 놀라게 하여 소리, 소리 질렀던 일이 슬며시 미안스러워지는 밤이다.
귀농하고 한가한 시간이 되면 남편을 연구하는 버릇이 생겨 산골의 겨울나기가 솔솔 재미가 난다.
도시에서야 그 알량한 자존심 싸움에 머리 세는 줄 몰랐는데 귀농해서는 잔머리 쓰는 일을 손 털어서 그런지 머리로 상대방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현상을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겼다.
이 또한 귀농의 망극한 힘이기도 하다.
겨울의 산골 일이란 넉넉하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귀농 촛자인 우리는 더욱더 그렇다.
나무해오고, 장작 패서 아궁이 가까운 곳에 차곡히 쌓는 일이 큰 일이다. 그 외의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된장 담그기, 효소 담그기 등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겠다고 떵떵거리고 내려온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도 큰 일이다.
겨울에도 일은 쉴 새 없이 많으나 여름처럼 마음의 조급함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남편이 요 며칠 말도 없이 저 윗 밭을 몇 차례 다녀오는 거였다.
처음엔 호기심 많은 사람이 지형 파악에 나섰나 보다 하고 넘겼다.
지형 파악이라는 것은 별게 아니고 이 땅을 살 때 측량을 하지 않고 전 주인 할아버지의 얘기만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남편이 지적도의 땅 모양과 실제 땅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며 시도 때도 없이 밭 끝까지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땅 모양이 다르다고 하여 뭘 어쩌겠다는 것이 아니고, 모양이 다른 원인이 뭔가를 알고 싶었던 거였다.
어느 날,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져 가는 데도 이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이 나타나질 않았다.
이젠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위험한 경운기도 그대로이고, 엔진톱도 제자리에 있고, 차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데 남편만 오두막에 없으니 4 식구만 달랑 사는 산골에 비상이 걸렸다.
아이들은 감기 기운이 있기에 모과차와 효소를 번갈아가며 먹여 낮잠을 재운 터라 혼자 손전등을 들고 윗 밭으로 오르는데 저만치 시커먼 물체가 움직였다가 서고, 움직였다가 서기를 반복하는 거였다.
사실 긴장이 되어 뒤통수가 뜨끈해졌다.
손전등을 들이대면 짐승이 달려들 것 같아 조심히 다가가는데
"선우 엄마야?"한다.
가보니 지게를 지고 주저앉아 있었다.
짐승에게 다쳤나 보다 하는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뭐에 그랬는데?"
"뭐가 뭔데?"
그 와중에도 농담하는 걸 보니 짐승의 습격은 아닌 모양이다.
가까이 가보니 다리를 삔 것이었다.
요 며칠 윗 밭 꼭대기를 오르내린 건 지형 파악 때문이 아니라 눈이 많이 와서 노루 등 산골 짐승들의 먹이가 걱정되더란다.
올라가 보면 발자국이나 앉아 있던 자리도 있고, 염소 똥보다 큰 분비물도 있고 해서 가져간 감자랑 누룽지 등을 두고 왔었단다.
다음 날 가보면 감자와 누룽지 등이 흔적도 없더란다.
그래 오늘은 감자랑, 누룽지랑, 무 등을 지게에 싣고 더 멀리 골짜기까지 갖다 주고 오려고 했단다.
우리 밭 끝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서는 순간 미끄러져 발목을 삐었다고.
내려오는데 점점 발을 디딜 수가 없어서 쉬엄쉬엄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이 마당에 지게를 두고 오지 발도 아픈데 왜 지고 왔느냐며 볼멘소리를 하니 귀농하고 지게를 샀을 때 이제 정말 농사꾼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차보다 지게는 더욱 애착이 가는 물건이라 눈 속에 두고 올 수가 없었다며 그제야 지게를 내려놓는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호수에 물결이 일듯 눈물이 핑 돌았다.
빈 지게를 내가 지고 부축하고 내려오는데 별이 앞질러 나와서는 산골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선우 아빠, 그런데 노루가 누룽지를 먹기나 해?"
"마땅히 줄 것도 없고 누룽지는 서울에서 보내온 것이 많고 해서 궁하면 먹겠지 했지."
다리에 얼음찜질을 해 주고 보일러실에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감자가 겨우 반 바구니도 안 남았다.
산골 식구들의 겨울 양식을 다 축냈으니 산골 노루는 내가 농사지은 유기농 감자 먹고 우린 시장에서 사다 먹어야 할 판이다.
나무들이 머리에 가득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어머니가 머리에 콩이며, 깨를 이고 딸 집으로 가는 모습 같다.
나무도 저마다 이고 있는 눈의 양이 다르다.
어느 놈은 추기경의 빵떡모자만큼 앙증맞게 이고 있는 나무가 있는 반면 욕심껏 끌어안다가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겪는 놈도 더러 있다.
사람이든 나무든 욕심이 많으면 뒤탈 나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두릅나무 밭에도 이번 내린 눈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정없이 허리가 꺾여 있다.
눈이 녹으면 베어다 군불을 때야겠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