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귀농자의 귀농일기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른다고들 한다.
그런데 난 농사를 짓기 전에 자연 속에 내가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더 시간이 바삐 흐르는 것 같다.
구름이 나의 말에 동조한다는 뜻으로 오락가락하며 나의 그 생각에 못을 박는다.
밭에 있는 돌도 캐내고 저 윗 밭의 샘에서 나오는 청정한 맑은 물을 집 가까이로 끌어오는 공사를 한다며 포클레인을 불렀다.
포크레인을 부르는 비용이 비싸다 보니 효율적으로 일을 시키기 위해 초보 농사꾼은 머리에 각을 세우고 하루 공사계획을 세우고 있다.
계획을 아무리 완벽하게 세워도 귀농 촛자다 보니 안 해도 되는 작업을 하거나 한 일을 또다시 건드려야 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전체적인 시골 일을 파악하지 못해서인지 멀리 보고 일을 시키는 일에 서툴다.
그리되면 일은 진척이 없고 한번 부르는데 비싼 돈을 치러야 하므로 돈만 하염없이 들어가는 꼴이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면 떡 친다던 공사를 이틀을 했는데도 끝이 안 났다.
그건 딱히 초보 농사꾼만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포크레인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일을 해야 순서에 맞고 효율적인지 눈 감고도 알지만 순리대로, 효율적으로 일을 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가끔은 귀농했다고 하니 뭣도 모르는 사람으로 알고 뒤통수치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농사일을 모르거나 일머리를 모를 수는 있어도 눈치는 구단인데 뒤통수를 치면 그렇게 씁쓸할 수가 없다.
결국 초보 농사꾼이 하루면 될 공사가 끝이 안 났는데도 포크레인을 보냈다.
마무리 작업은 본인이 '충분히'(이게 중요함)할 수 있다며....
어쩌면 작업을 계속해도 공사 날짜만 늘어나고 비용 지출만 늘어나지 별 진척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날 비가 왔다.
오랜만에 비가 오니 마음의 먼지도 가라앉는다.
초보 농사꾼은 삽 들고, 장화 신고 베테랑 농사꾼처럼 씩씩하게 논으로 향한다.
논물을 보고 온다고 나갔던 초보 농사꾼이 막 돌아와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하는데 그와 동시에 우리 부부가 보는 앞에서 영화처럼 눈둑이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와르르르....
우리들의 초보 농사꾼, 하루면 눈 감고도 다 할 수 있다던 공사가 이틀이나 걸렸는데도 공사 마무리도 못하고 포크레인을 결국 보낸 것까지 였으면 얼마나 쌈빡했을까.
하루 만에 논둑이 터져 포크레인의 그림자가 미쳐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부르게 되었으니 얼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이쯤 되면 침묵이 금이다.
자연에서 배운 것이다.
도시 같았으면 ‘내가 뭐라고 했냐. 일머리를 잘 파악해서 포크레인 공사를 했어야지.. 포크레인 하루 부르는데 돈이 얼만데...어쩌고저쩌고...’ 탓을 했겠지만 그게 부부 사이에 금만 갔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자연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자연에서 귀농 부부는 자주 침묵한다.
침묵 이상 스승이 없다는 것도 깨쳐가고 있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