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아들이 내 아버지처럼 칼을 간다.
우리는 모두가 농사꾼이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자기마다의 작은 마음밭을 일구고 살아야 하니까...
어떤 이는 거름을 잘 주고, 물도 잘 챙겨 먹이고, 햇살을 가득 받도록 정성을 기울일 것이고,
어떤 이는 바쁘다는 핑계로 열과 성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전자의 마음밭은 구리스를 바른 것처럼 늘 윤기가 흐를 것이고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그 파도를 잘 뛰어넘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마음밭은 골다공증 환자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그 회오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뭄으로 애간장을 태울 때도 있고, 태풍으로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배우라는 신의 신호다.
이 모든 이치와 지혜를 다 깨달았을 때는 삶에 어스름 노을이 질 때겠지.
귀농하여 자연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살게 되었으니 서울에서 살 때보다 그 이치와 지혜를 조금 일찍 깨달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주부는 칼이 잘 들어야 부엌일이 수월하다.
귀농 전에는 친정아버지께서 갈아주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친정에 가겠다고 전화드리면 대뜸
"막내야, 부엌칼 신문지에 잘 싸가지고 가방에 찔러 넣어오너라."
하셨다.
그러면 난 집에 있는 칼이란 칼은 다 쑤셔 내서 갖고 나섰다.
막내딸이 들어서면 딸 얼굴도 안 보시고 가방 먼저 받아 아버지는 칼부터 꺼내셨다.
그러시고는 당뇨병으로 온몸에 기계를 훈장 차듯 덕지덕지 붙이시고 힘든 몸을 어찌어찌 자세를 바꿔가며 하루 종일 칼만 가셨다.
엄지 손가락으로 날을 쓱 문질러 보았다, 숫돌에 물을 조금 손으로 떠 얹은 다음 다시 숫돌에 칼을 올려놓고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시며 하루 종일 잘 노셨다.
다리가 굳어진다며 의자를 찾으시고 다시 자리를 고쳐 앉으시면 한동안 다시 칼을 가신다.
이 무딘 칼로 어찌 살았느냐고 계속 중얼거리시며 날이 서기를 기다리신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만에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신문지에 싼 것을 내놓으시며 이 말도 함께 입에서 꺼내놓으셨다.
"막내야, 아버지가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시기 전날, 네 칼 마저 한 개 두고 간 것 갈아서는 이리 싸놓으시고 서둘러 길을 가셨구나."
엄마와 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한 겹 한 겹 신문지를 풀며 아버지의 아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 위로 다 헐어버린 내 상처에 아비의 애림이 흘러내린다.
한동안 그 칼을 쓰면서 '이제는 이 도시에서 누가 내 칼을 갈아주나.'하고 혼잣말을 하며 눈가가 붉도록 울었다.
그리고 귀농....
아버지는 번듯한 직장 잘 다니다 사표 낸다고 하셨을 때, 엄청 실망하셨었다.
하물며 귀농....
아마도 귀농하는 막내딸의 꼴을 보지 않으시려고 서둘러 이승에서의 좌판을 접으셨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그 칼을 썼으니 얼마나 칼이 무뎌졌겠는가.
오는 이 마다 칼 좀 갈아 쓰란다.
갈아 써야 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손끝을 느끼고 싶어서이리라.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칼이 너무 들지 않으니 손가락이 위험할 지경까지 되었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칼을 간다.
초보 농사꾼이 낫을 간다고 사다 놓은 숫돌에 나의 아버지를 흉내 내며 이젠 딸이 칼을 간다.
먼저 물을 숫돌 위에 적시고 그 위에 칼을 반복하여 문지른다.
이 방법이 맞는지 틀리는지 조차 모른다.
물을 부으면 아버지의 얼굴이 흘러내리고 그 위로 딸의 눈물이 구른다.
눈이 침침하여 이내 때려치운다.
그래도 꼴에 갈았다고 며칠은 잘 든다.
그리고 한 일 년을 그리 살았다.
얼마 전에 어린 아들 선우가 낫을 갈아준단다.
말렸다.
아직 서투르니 다음에 좀 더 크면 아빠처럼 씩씩하게 갈라고 했다.
아이는 알았다고 하고는 남모르게 낫을 반듯하게 갈아놓았다.
그래도 칭찬을 아꼈다.
자꾸 할까 봐서...
그리고 어느 날 혼잣말로
'칼이 이리 안 드는데 칼도 안 갈아주고....' 초보 농사꾼에게 불평하는 소리를 선우가 들은 모양이다.
"엄마, 저 칼 잘 갈 수 있어요."
"이 담에 갈아주렴"
칼을 갈려면 이 추위에 물을 밖에서 만져야 하고 그러면 손이 얼어 터질 지경일 텐데 하는 생각만 했다.
그땐 한 겨울이었다.
아이는 칼을 멋지게 갈아와서는 혼이 날까 봐 식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고 가버린다.
내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인다.
아무 말 없이 칼을 써보니 내가 간 것과는 질이 다르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며 꼭 안아주었다.
사실 너무 요긴하게 칼을 쓰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말이었다.
작년에 야콘 캐는 날 부엌칼을 가지고 밭에 갔다가 잃어버리고 왔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올해 비닐을 치기 위해 올라갔다가 초보 농사꾼이 발견하고 잃어버렸던 칼을 찾아내려 왔다.
아들 선우가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
"선우야, 엄마 칼 좀 갈아줄래?"
"네~~ 에~~~"
한 톤이 높다.
책 읽기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어린 아들은 숫돌을 비스듬히 놓고 자리를 잡는다.
멀리서 보니 그렇게 신중할 수가 없다.
"아버지, 제 칼 걱정 마세요. 선우가 잘 하고 있어요.
아버지, 그곳에서도 남의 무디어진 칼을 갈아주고 계시는지요?"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에 배 동분 소피아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