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산골에는 고유의 여유가 있다.
비 오는 날엔 툇마루의 의자에 앉아 차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바람이 부는 날엔 오두막 안의 오래된 나무마루에 앉아 바람이 유리에 와서 냅다 부딪쳐 튕겨져 나가는 소리를 느끼고 싶다.
오늘은 비가 오니 툇마루 행이다.
툇마루에 나와 앉아 있으면 산골 친구들도 차 한 잔의 여유를 갖고 있는지 묻고 싶어 진다.
그나마 비가 왔다고 작은 개울물 소리가 한결 씩씩해졌다.
저 위의 언덕에서 홀딱 벗고 새가 빗물로 새끼 목욕시킨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얼마나 냇물을 오염시켜 놓았는지도 볼 겸 냇가로 나가보고도 싶다.
귀농 주동자인 초보 농사꾼도 귀농 아낙의 이런 '정서 놀이'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제동은커녕 멋없는 귀농 주동자도 조금씩 정서에 싹이 트고 있으니 아마 그도 빗소리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틀림없다.
모두가 물질적인 것에 핏대를 세울 때, 남편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루소처럼 외쳤었으니 그 값은 해야 할 것이다.^^
낮에 그런 저런 생각에 한껏 여유를 부려보았는데 밤이 된 지금도 창호지문 밖에서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청량할 수가 없다.
창호문 안과 밖의 경계란 종이 한 장이다.
그 종이로 달도 그리우고, 별들도 죄다 들어와 박힌다.
사람 사는 냄새 또한 창호지에 젖어 들어 자체로 삶의 얼룩이 된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 뒤로 홀딱 벗고 새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왜 안 자고 나와 저러는지 모를 일이다.
혹여 새끼가 목욕하고 감기든 것은 아닌지.
그러니 저리 자장가를 불러재끼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비 오는 날엔 그저 날밤을 새고 싶다.
사유(思惟)라는 사치를 부리고 싶어서...
귀농을 했으니 이런 사치를 부리지 서울 살 때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다.
그저 욕심을 키우느라 나의 정서에 물을 줄 세도 없었으니까.
산골에서 배 동분 소피아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