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를 하는 딸에게!!!

산골의 귀농이야기

by 배동분 소피아


산골의 겨울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어느 날은 코 앞이 봄인 듯 콧구멍을 들썩이며 봄으로 향하다가도, 어느 날은 무르팍까지 눈이 오면 찍소리 못하고 다시 겨울로 가슴을 돌린다.

요즘이 그렇다.
엊그제만 해도 일본 최고의 선시(禪詩)를 남겼다는 이뀨(一休) 선승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벚나무 가지를
부러뜨려 봐도

벚꽃이 없네.
그러나 보라. 봄이 되면
얼마나 많은 벚꽃이 피는가.

1-DSC00802.JPG (생강나무꽃)


그 시를 읽으며 산골 봄의 전령사인 생강나무 꽃을 떠올렸었다.
그것도 잠시 눈이 펑펑 왔다.
금세 산중은 크리스마스 카드 버전으로 탈바꿈했다.

그럴 때는 다시 마음을 돌려 ‘봄이 멀었구나’ 하고 단정 짓는다.
그런 오락가락함이 몇 번 반복되고서야 봄을 맞이하는 산중이다.



산골소녀 주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이다.
준비물을 함께 챙겨줘야 하지만 융단폭격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얽혀 손발이 뇌의 지시를 거부한다.
서로 따로국밥이다.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하지만 3년 먼저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주현이가 가는 울진고등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 선정하는 기숙형 고등학교로 선정된 곳이다.

기숙사를 새로 지었고, 엊그제 합격자 발표가 났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애드벌룬처럼 허공을 휘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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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낭랑한 목소리로 경전을 읽어주며 위로해 주던 새들도 폭설에 놀라 어느 나뭇가지 아래로 숨어들었는지 찍소리도 없다.

초보 농사꾼도 서운한 마음인지 늦은 밤에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자며 다락방으로 불러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좀처럼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 그가 서운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의 전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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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진종일 마음이 어수선하여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일 ‘새로운 길’을 떠나는 딸에게 편지를 썼다.
다락방의 작은 창 너머에서는 소복소복 눈이 쌓이고 난 등신처럼 힘없이 앉아 편지를 썼다.

너를 임신하고 유산기가 있어서 한동안 입원을 했을 때, 매일을 울부짖었다고...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그 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주현이 너를 얻을 수 있었고 엄마는 그래서 행복했노라고 썼다.

네가 나를 부모로 선택해 왔으나 엄마의 역할이 신통치 않았음도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네가 엄마랑 모녀지간이 되었음을 행운이라 여겨주길 바란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할 말이 많았으나 창밖의 눈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자제하라고, 이렇게 자제하라고 먼저 온 눈을 누르며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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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 때려치우고 세 가지만 당부했다.

첫째, 미친 듯이 하루를 살라고.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라고 했다.
너를 떠나보내는 엄마도 조금만 서운해하고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나 오늘을 열광적으로 살겠노라고...

둘째, 솔로몬 왕의 이 말을 어떤 일이 있든 엄마처럼 자주 옹알거리라고 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좋은 일이 생겨도 주위 사람들이 함께 진동을 느끼도록 호들갑 떨지 말고, 달갑지 않은 일이 생겨 가슴이 화끈거려도 인생 다 산 것처럼 죽상 쓰지 말고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고 주문을 외우라고 그러면 이내 마음 저 밑바닥부터 평화가 엄습해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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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삶의 어떤 순간에도 너를 현명하게 하고, 위로를 주고, 지혜와 용기, 희망을 주는 것은 책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삼시 세끼 밥 먹는 것처럼 그렇게 책을 읽어 영혼의 양식이 되도록 하라는 당부를 종이에 박았다.

이제 기숙사 입실을 위해 집을 나서야 한다.
이불, 요, 베개, 치약, 칫솔, 수건, 옷, 그리고 책 등을 보따리에 쌌다.
눈이 갑자기 많이 왔기 때문에 초보 농사꾼이 먼저 그 많은 짐들을 차에 싣고 차가 눈으로 고립되기 전에 국도가에 내려다 놓고는 걸어서 눈길을 헤집고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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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초보 농사꾼이 딸 주현이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은 네 할 탓이니 스스로 개척해 나가라며 딸아이를 오래도록 안아준다.

오후 3시까지 입실이니 이제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서야 한다.
국도가에 세워둔 차까지 눈길을 걸어서 가야 한다.

아이들이 눈길을 걸어간다.
세상에서 핏줄이라고는 둘이 되겠지.
그렇게 등을 기대며 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이 삶인 것을 이제는 스스로 깨치며 살 것이다.
너희들이 앞으로 가야 하는 인생길 또한 이러하리라.


갑자기 폭설이 와서 네가 가야 할 길이 막히기도 할 것이고, 비가 많이 쏟아져 가는 길이 질퍽하기도 할 것이다.
그게 더 심하게 되면 아예 길이 물살에 떨어져 나가기도 하겠지.

그러다 언제였었나 싶어 하며 따사로운 흙길이 너희들의 발을 모카신을 신은 것처럼 포근히 감싸주기도 할 것이다.

길이 막히고 질퍽하다 하여 상심하지 말고, 흙내 나는 길이 포근하다고 하여 오두방정 떨지 말고 침묵하며 너의 길을 가길...

그들은 뒤따라가는 나의 침묵기도를 들었는지 묵묵히 눈 쌓인 산길을 걸어간다.

읍 가까이에 이르자 눈이 소면보다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왜 이런 날 비는 오는지...
내 마음처럼 하늘도 서운한 모양이다.
1-S8006506.jpg (멀어져가는 딸아이 곁으로 시냇물이 동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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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도착하여 빗속에 이불, 요, 베개 보따리, 옷 보따리, 각종 소지품 등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옮기기 시작했다.
보자기에 싼 이불 보따리가 제일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시집보내는 마음도 이러할까.
그렇게 주현이를 기숙사에 남겨 두고 나왔다.

이번에는 소면보다 굵은 칼국수 면만 한 비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어깨 위에, 머리 위에 앉아 아는 체를 한다.

‘나의 딸아, 너의 길을 힘차게 나아가렴.

역시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마.

우리 2주 후에 다시 만나는 날,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토닥여주자.‘

(이 글은 2010년 3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