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2년의 글이다.)
겨울의 자작나무는 눈과 잘 섞여 논다.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도 은색의 자작나무는 기죽지 않고 립스틱에 펄을 섞은 것처럼 화사하게 튄다.
내 허리만큼 굵은 자작나무보다 어린것이 더 혈색이 좋다.
울진 국도가에는 부러 자작나무를 심어놓은 곳이 여럿 있다.
몇 년 전 가리왕산에서 본 자작나무보다 더 정스러워 보이는 건 어찌 보면 울진으로 귀농해서 정 붙이고자 하는 안간힘이 작용했기 때문인듯하다.
************************************************
주일이라 불영계곡을 따라 성당에 다녀왔다.
지난주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이라 주일인 오늘도 재의 예식이 있었다.
'재의 수요일'이란 천주교에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첫날로, 교회가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머리에 얹는 예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사제는 오늘부터 회개와 속죄의 상징인 자색 제의를 입는다.
산골에서 읍내 성당까지는 45분 정도 걸린다.
말이 45분이지 계곡이 워낙 험난하다 보니 딸아이는 멀미를 해 한 겨울에도 히터를 못 켜게 한다.
이 추위에 히터 끄고 트럭이 달려보라.
부지런히 산골 동물들 밥 주고 나서면 거의 턱걸이.
마음을 정갈히 하기도 전에 헐떡거리며 뛰어들어가 앉았는데 '재의 수요일'예식이 있었다.
신부님은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하시며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어 주셨다.
목젖까지 울음이 복받쳐 올라 그것 끌어내리느라 침을 몇 번이고 꿀꺽거려야 했다.
서울에 붙어살 때는 같은 예식 때 이런 감정의 반의 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연고 하나 없는 오지 산골로 귀농하고 이 예식에 참석하니 그전에 느낄 수 없었던 머루주만큼이나 진한 감정이 새록새록 가슴을 치받았다.
'그래, 나 또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자리 펴고 잠시 쉬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미사 중 내내 머리 꼭대기에서 휘장처럼 펄럭였다.
감정 교차가 심해서인지 집에 돌아오니 그저 몸뚱이를 쓰러뜨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일주일치 부식거리 사 온 것을 다락에 맛있는 과자 감추듯 15평도 안 되는 오두막 한편에 정리하고 있는데 낯선 차가 산골로 들어왔다.
잘못 들어와 돌아가는 차도 가끔 있기에 그저 눈만 고정시키는데 거의 노인에 가까운 사람이 쌀쌀맞은 바람을 끌어안고 다가왔다.
초췌한 모습과 낡디 낡은 차가 날씨만큼이나 한기를 느끼게 했다.
일단 안으로 모시고 거제도에서 선물 받은 유자차를 나무난로 옆에서 나누어 마시는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낯선 손님은 어느 정도 몸이 녹았는지 묻지 않은 자신의 삶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안산의 아파트에서 퇴직금으로 생활하고 있단다.
많지 않은 돈으로 주식투자라도 해보려니 다 털어먹을까 봐 겁이 나더란다.
답답하고 할 일도 없고, 기원에 가보니 담배연기 때문에 건강만 해쳐 그것도 치웠단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시골행.
귀농지를 물색하던 중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이곳저곳 다니다 얼음물에 빠져 맨발이라며 머리카락만큼이나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허연 발가락을 움츠리는데 내 가슴도 박자맞춰 움츠러들었다.
귀농할 돈도 넉넉지 못해 야산이나 버려진 땅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씁쓸히 웃으시는 입가로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귀농이라는 공동분모를 가진 사람끼리 앉았으나 먼저 귀농한 자의 여유가 아직은 없는 터라 그나 나나 귀농 촛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 데리고 이런 산골에서 사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시곤 자리를 터셨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양말 한 켤레를 할머니가 손자 손에 사탕 쥐어 주듯 손에 쥐어 드렸더니 극구 사양하시다 들고 가시는 모습 뒤로 찬바람이 쫓아가고 있었다.
모두는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흙 가까이로 옮겨 앉으려는 속내를 지니고 사는가 보다.
**********************************************
까마귀가 한 동안 안보이더니 요즘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는 듯이 눈앞에서 알짱거린다.
개사료를 쏟아 먹질 않나, 쓰레기 비닐을 다 찢어 온 산골에 날려버리질 않나 온갖 미운 짓을 하더니 이번에 나타난 까마귀들은 예전의 녀석들과는 달리 신사적이다.
그저 집 주위에서 나물 캐러 온 아낙네들 얘기하듯 지들끼리 악악거리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 정도의 교양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할 수 있겠는데 언제 또 일을 저지를지 몰라 경계의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날이 풀려 얼었던 별들이 녹아 떨어질 것만 같은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