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이래도 괜찮아요.'
(이 글은 2002년의 글입니다.)
귀농하기 전에 이 땅이 나왔다고 하기에 귀농 허락도 안한상 태에서 이 집을 보러 왔었다.
15평도 안 되는 오두막이 달팽이 집처럼 산 아래 놓여 있었다.
어찌나 넉넉해 보이던지.
그때 벌써 난 마음 한편에 귀농을 찬성해야겠구나 하는 감정이 젖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 오두막엔 군불 때는 방이 하나 있다.
워낙 오래된 흙집이라 군불을 때면 집안 곳곳에 연기가 먼저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아무리 구들을 새로 놓고 흡출기를 굴뚝에 달아 쌩쌩 돌아가도도 흙이 떨어져 나간 곳으로 연기는 어김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연기에 이골이 난 산골 가족들이라도 정도가 심해지면 전국적으로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산골의 한 겨울 날씨가 코를 베어갈 듯해도 어쩔 수 없다.
연기가 빠져나가기도 전에 얼음바람이 밀려 들어오니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다 보면 아궁이의 불은 다 타 버리고 연기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예전의 평온을 되찾는다.
*****************************
귀농한 오두막에 서울에서 가져온 세간살이가 들어가지 못해 대형 하우스를 부랴부랴 지어 그곳에 다 때려 넣었다.
문도 창호문이니 말 다했지 싶다.
장롱도, 서랍장도, 운동기구도, 계절별 옷가지도 모두가 하우스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아직도 세간살이의 일부가 하우스에 들어있다 보니 자주 하우스에 물건을 찾으러 간다.
남편도 같은 이유로 하우스에 가긴 마찬가지다.
큰 스테인리스 국자를 찾으러 가니 남편도 그곳에 있었다.
암벽화와 자일(암 벽등 반시 사용하는 줄)을 어루만지며 서있는 모습이 눈에 박혔다.
왜 아니겠는가.
애지중지하는 암벽등반용품이며 텐트 등이 서울에서 끌어다 놓은 그대로 하우스에서 빛이 바래가고 있으니 말이다.
연휴에는 산악부 친구들과 의례가 먼 산행을 떠나곤 했던 그가 귀농 후, 산이라곤 밭 꼭대기 위의 산에 효소 거리 채집하러 간 일밖에 없으니 몽유병 환자처럼 훌쩍 떠나곤 했던 병이 치유된 건지, 병을 감추고 사는 건지 궁금하던 터였다.
나를 알아본 남편은 배낭을 마대자루에 쓰레기 쑤셔 넣듯 찔러 넣고는 나가버렸다.
아직은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서울에서의 생활패턴이 몸에 배어 있어 가끔씩 감회에 젖곤 하는 시기인 모양이다.
남편이 남겨두고 간 그 서늘한 기운이 가슴에 닿자 내 마음에도 이내 살얼음이 끼었다.
내가 무얼 가지러 왔더라.
가슴을 녹이고 스텐 국자를 찾기 시작했다.
마음 따로, 손따로.
어느 상자에 넣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여기저기 건드려 보는데 한국생산성본부 로고가 찍힌힌 서류봉투 묶음이 눈에 얼쩡거렸다.
끈을 풀고 꺼내보니 귀농 전, 생산성본부 다닐 때, 강의 가면 사용하던 원고와 OHP 필름이었다.
그랬다.
이삿짐을 쌀 때 버리지 못하고 여물게 묶어왔었다.
그때는 다음에 다시 사용할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도 아니고 기념으로 남겨둬야겠다는 애틋함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아왔던 한 파편이기 때문에 조각을 버리지 못하고 산골에까지 끼고 왔을 뿐이다.
강의원고를 들여다보고 나니 아까 남편의 멍한 모습이 다시 머리에 어른거렸다.
그 감정이 이 감정이었으리.
내가 좋아 선택한 일이지만 아직은 서울에 길들여져 있어서 생각과 몸이 갈팡질팡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나 역시 상자에 대충 강의원고와 필름을 찔러 넣었다.
남편이 무언가 찾으러 왔다가 빈 손으로, 빈 가슴으로 나갔듯이, 나 역시 국자를 찾지 않은 채 빈 손으로 하우스를 나오고 말았다.
*******************************
마음이 허한 날엔 겨울이고 여름이 고와 관계없이 마당에 서고 싶다.
털신을 신고 마당에 나가보니 별들이 죄다 나와 있다.
조금 있다 다른 별친구들도 몰려올 거라는 말이라도 전하려는 듯 점점 가까이 다가와 앉는다.
들고 나온 커피를 들여다보니 어느새 별 두 개가 들어와 몸을 담그고 있다.
입가에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낮의 기분은 별 커피가 다 흡수해 버리고 향기만이 코끝을 간질이고 있다.
난 지금 내 신발 코를 보고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이 글은 2002년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