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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19. 2017

내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

(귀농 아낙의 봄단상)

오늘이 경칩이네요.

귀농하고 출세했어요.

경칩이라는 절기에 의미도 두고 말입니다.


울진장에 갔어요.

개구리가 겨울이불을 걷어버리고 튀어나온다는 경칩이지만 산골은 아직도 동안거중입니다.

때도 시도 없이 눈이 펑펑 내리고 온 대지가 해동의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말하면 뭐하겠어요.


4월에도 눈이 펑펑 온다니까요.     

그런데 귀농하고 알았어요.

‘봄눈녹듯 한다’는 그 말의 뜻을요. 

   

(내가 사는 울진장에 나온 인연들...)

봄눈은 아무리 많이 쌓여도 내리자마자 이내 살살 녹아요.

혀 위에 올려진 솜사탕처럼요.

자연 곁자락으로 살러 들어와서 별의 별 것을 다 체득한답니다.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요.     


말이 또 샜네요.

울진장에 간 이야기를 하다가 솜사탕 이야기까지 이어졌으니 참...^^     

장바닥에 펼쳐진 이런 풍경이 눈에 먼저 들어왔으니 제가 그냥 스쳐지나가진 못하지요.

발목을 붙들렸습니다.   

  

'니들도 겨울잠을 자고 햇빛 쬐러 나왔구나'

'지금은 껍질로 몸을 감싸고 있지만 이제 곧 꽃을 피우겠구나. '

    

(울진장에 나온경칩의 풍경

맘같아선 몇 개 사고 싶었지만 사실은 제가 며칠 병원에 들어가 앉아 있을 예정이라 참았습니다.

생명 붙은 것을 사다놓고 관리소홀로 목숨줄을 끊어놓으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히야신스 구근을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앉아 있는 생각들어 깨워 꺼내 보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페르시아의 어느 시인 이야기예요.   

"내게 은전 두 닢이 생긴다면, 한 닢으로는 빵을 사고,
나머지 한 닢으로는 내 영혼을 위해 히아신스를 사리라."    

 

(울진장에서...경칩에...)

막말로 전 재산의 반을 영혼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시인의 말이 오늘따라 큰 울림을 줍니다.     

혹여 난 가진 것의 전부를 거죽이 삐까번쩍 하는 것에 몰빵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생각은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히아신스 줄기가 담긴 바구니>라는 작품이예요.

히아신스 구근은 겨울동안은 실내에서 지내야 하지요.

긴긴 겨울의 터널을 나야 하는 산골가족이랑 같은 처지입니다.    


히아신스는 너무 따뜻한 곳에 있으면 건조하고, 말라 죽을 염려가 있지요.

적당히 추운 곳에서 촉촉함을 유지해가며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땅에 머리카락 이식하듯 이식을 하게 되지요.

    

겨우내 생명부지를 위해 투쟁한 히아신스의 흔적을 고흐는 <히아신스 줄기가 담긴 바구니>라는 작품에 잘 나타내고 있어요.

겨울을 잘 견뎌내면 흙에서 다시 삶을 살게 되는 처지라 히아신스는 '자연에서의 영원한 삶'을 의미한다고 해요.

    

(베를린 배낭여행 중 내 발목을 잡은  아이들)

페르시아 시인의 말을 떠올리고, 그리고 겨울을 잘 나야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히아신스의 모습을 보면 여봐란 듯이 모가지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다가도 이내 자라 모가지처럼 오그라져 들어갑니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영혼에게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주고 얼지 않도록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닌지.     

시골 장터에 나와 앉아 있는 꽃 구근들을 보며 내 영혼에 물을 주는 그런 한 해를 지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딸과 함께 베를린 배낭여행 중 만난  아이들)

그리고 ‘우리에게 놀토가 있듯이 영혼에게도 안식일이 있어야겠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얻습니다.     

이 봄날, 당신의 영혼은 촉촉한지요??   


2017. 3. 5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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