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삶을 뜸 들이는 시간이다.

귀농 아낙의 메주 이야기

by 배동분 소피아

서울에서 귀농하여 깨닫는 것이 ‘어느 순간 하나 스승 아닌 게 없다’는 것이다.

나의 정신세계가 세속적인 것에 올인하고 있는지 자주 들여다보아야만 한다는 게 전제조건이지만 말이다.


산골로 귀농하여 좋은 점 중 하나는 멋진 자연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발효효소가 그렇고, 된장, 청국장 등이 그렇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먹거리는 실력이 제일이지. 무슨??“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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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연조건임을 귀농하고 알았다.

아무리 입만 열면 어느 TV에 고정 출연 어쩌고저쩌고 하는 요리연구가라 하더라도 자연조건이 바쳐주지 않으면 최상의 맛과 영양, 품질을 갖추긴 어렵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된장만 보더라도 기계에서 삶아진 것보다 가마솥에서 장작을 때서 삶아진 것이 더 좋음을 두 말하면 입 아프다.


거기에 뜸 들이는 시간도 장작에서만이 최상의 뜸을 들일 수 있다.

장작불만 좋은 조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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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그렇다.

좋은 물로 소금물을 풀어 된장을 만들기 때문에 물도 중요한 요인이다.

장작불과 물 이외에도 좋은 기후가 바쳐주어야 한다.

내가 귀농한 이곳은 해발 700고지가 훨씬 넘는 곳이라서 아침저녁 기온차가 크다.

6월까지도 불을 때고 자야 할 정도로 저녁이면 춥다.

아침저녁 기온차가 큰 곳에서는 발효식품이 잘된다.

그뿐 아니라 농산물의 맛과 영양도 고랭지는 월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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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중요한 요건, 맑은 공기가 있겠다.

이런 좋은 조건을 갖춘 곳에서 숨 쉬고 먹거리를 만들고 뒹굴며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귀농 주동자인 남편 뒤통수다 대고 거수경례를 붙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서론이 이렇게 길어서야...


콩을 불리는 데 낙엽이 날아와 앉는다.

한 해 동안 안 해본 농사짓느라 고생했다며 토닥토닥 등 두들겨 주는 것만 같아 코끝이 싸해온다.

불린 콩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에 불을 붙인다.

오래오래 기다려야 나무에 불이 붙어 제 할 일을 한다.


가마솥 뚜껑 사이로 알람처럼 눈물이 흘러야 익어가고 있다는 징조다.

콩이 익었다고 꺼내는 것이 아니다.

뜸을 들여야 한다.

또 한 번의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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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을 들이고 꺼내 메주틀에 넣고 네모난 메주를 만든다.

밖에서 어느 정도 꾸둑꾸둑 말라갈 즈음 황토방에서 마저 제 몸을 말린다.

오두막에 작은 구들방이 있는데 그곳이 메주를 숙성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사방의 벽이 흙이라서 메주 때깔이랑 구별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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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방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메주를 놓고 그 위에 솔잎을 올렸다.

군불을 지피고 한 번씩 창호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주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숙성이 끝난다.

그러면 햇살 좋은 날, 메주를 해바라기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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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곰팡이도 털어주다 보면 메주 위에 햇살이 수지침 꽂히듯 꽂힌다.

이렇게 함으로써 된장을 담글 재료 준비가 끝이 난다.

된장을 담그는 일도 이렇듯 세월 밥을 필요로 한다.

산골의 일은 어느 것 하나 시간을 먹이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된장을 담그는 일에서도 기다림을 배운다.

기다림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보다 찰진 것을 얻기 위해 뜸 들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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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무엇으로 기다림을 배우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