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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Jul 18. 2017

추억도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른거야.

귀농아낙의 귀농이야기


난 추억으로 남는 것은 마음이라는 공간에서 별도의 주머니에 관리되는줄 알았다.
어떤 것은 추억으로 남고, 어떤 것은 상처로 남고, 어떤 것은 압정을 밟은듯한 날카로운 아픔으로 남고, 어떤 것은 새털처럼 가벼웠던 자유로 남고, 어떤 것은 가슴벅차 이리저리 서성이던 행복으로 남고...남고, 남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그 모든 것이 추억이라는 것을...

튼튼한 돌확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부레옥잠처럼 잔잔하고 애틋한 것만 추억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시인 김승희님의 <장미와 가시>라는 시에서처럼 장미만 기억하는 것만 추억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려서 기분 좋은 것만 추억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인생의 순간순간이 추억이다.
그 순간이 사금파리처럼 아프게 다가오든
복에 겨워 죽겠는 순간으로 다가오든
그 모든 것이 ‘추억’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 앉은 것임을 귀농하고 더 깨알같이 알았다.

다시 말해 피안 저편이 아닌 이편의 모든 것을 통틀어 추억이라 말하고 싶다.
나이든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추억으로 알아차리는 거란 생각이다. 


추억하면 오래된 머언 기억 속의 것만 추억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난 빈티지를 좋아한다.
신삥이라 번쩍번쩍 광나는 것보다
페인팅이 벗겨지고, 닳은 흔적이 역력한 소품 등을 보면 자빠진다.

가구도, 인테리어 소품도, 옷도, 가방도, 찻잔도, 만년필도...
추억은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손때 묻은 것으로 시간을 표현하는 빈티지풍이 왠지 넉넉하고 푸근하고 여유로워서 좋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빈티지 물건 중 하나를 소개하는데 이렇게나 서론이 길었다.
명 짧은 놈은 애시당초 숨넘어갔을 것같다.

난 커피잔 중에 꽃무늬 커피잔을 좋아한다.
꽃도 시원시원하게 생겨 잔의 거의 모든 공간을 나 잘난 듯이 차지하고 앉은 그림보다는
한 켠의 자리를 다소곳이 차지하고 있는 잘잘한 꽃무늬 잔을 좋아한다.


그 다음으로좋아하는 커피잔은 단연, ‘올드 파이렉스 그린 밴드 빈티지 커피잔’이다.

(커피잔만이  아니라 소스잔으로도 쓴다.)


샤넬 넘버5 향수가 향기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보다는 추억으로 다가오듯이 커피잔이 그저 잔으로가 아니라 추억이 된다.

파이렉스의 잔이나 병 소재는 딱 보면 안다.

투명이 아닌 뽀얀 우윳빛나는 느낌의 파이렉스 제품...
이 빈티지 파이렉스 커피잔이 내 손에 들어온지가 20년이 되어 간다.
이 제품은 모르면 몰라도 아주 오래 되었지 싶다.
저 라인의 경우 그린 밴드도 있지만 블루밴드도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코스터가 없다는 것...
그냥 아랫도리가 없으면 윗도리만으로도 애들 말마따나 추억 돋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 커피잔에 커피를 타주었더니 지인이 좋아자빠지며 하는 말이 인터넷 빈티지 사이트에서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이 잔이 거래되고 있다고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햇살에 말리는 시간을 즐기는구나'


커피잔의 엉덩이를 들여다 보면 양각으로 PYREX Table Ware by CORNING MADE IN U.S.A라는 글이 선명하다.

그 아래에는 일련번호도 있다.
하나는 701-23, 701-24, 701-31이라고 ...
아마도 제품별 일련번호거나 태어난 일련번호는 아닐까...

달랑 소서도 없이 이것만 남아서 아쉽다.
소서는 그냥 접시로 사용하면 분위기 있을텐데 말이다.

이 커피잔을 보면 추억이 한꺼번에 달라들다 보니 오늘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추억하면 인다라의 구슬 생각이 떠오른다.
박노해 시인의 <인다라의 구슬>...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화엄경)”-<인다라의 구슬> 중에서-

추억 역시 하느 하나가 뱀대가리처럼 고개를 들면 연결된 그 주위의 작은 추억들이 들고 있어나 마음 언저리를 울리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커피잔 하나에 여기까지 왔다.
추억이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삶의 퍼즐모음이라고 정의내리고 이제 그만 자야겠다.

꿈 속에서도 난 추억을 빚어야 하므로...


그대는 매 순간 어떤 추억을 빚고 계시나요?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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