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이야기
책은 눈으로 노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눈으로 노래할 때가 자주 있어야 한다.
노래는 꼭 즐거울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슬프거나 가슴 저미는 일이 있거나, 무언가를 마음에서 씻어버리고 싶을 때도
노래를 부르며 서성인다.
책 역시 즐겁고 뱃 속 편할 때만 읽는 게 아니다.
오늘 하루, 더럽게 핀트가 안맞았을 때, 작정하고 한 일이 먼지만한 결과도 못보았을 때,
슬플 때, 상처가 덧나서 아까징끼를 발라야 할 때, 정수리가 뻐근할 때 등 이런 때도 우린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니 난 자주 책을 산다.
거의는 새 책을 사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헌책을 살 때도 있다.
읽고 싶은 책도 사지만, 사서 읽었는데 누군가를 빌려줘서 분실한 책도 자주 산다.
또 아이들이 서울로 가져가서 자주 들춰보는 책은 나도 한 권 더 살 때는 주로 헌책을
먼저 검색하고 없으면 새 책을 산다.
헌 책은 주로 시집이거나 산문 등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나의 여행샘을 자극할만한 여행책이거나...
헌책을 기다리는 마음이 새 책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달뜬다.
헌책이 오면 반드시 행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우선 날짜 지난 신문지에 쌓여온 책을 꺼내 내용을 확인을 한다.
내가 제목과 저자, 대강의 내용, 출판사만 보고 산 책 내용이 맞는지...
그럴 때 풍겨오는 헌 책의 약간은 매퀘하면서도 종이의 세월냄새 같은 것을 맡는
것도 그 순서에 포함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책일 때도 있지만 아주 실망할 때도 있다.
물론 그저그런 책일 때도 있고 말이다.
사람을 처음 만날 때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순간은 내 감각세포가 솜털처럼 일제히 들고 일어선다.
가끔 헌책 속에는 누군가의 낙서가 박혀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왠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 악수하는 그런 기분이다.
그리고 수건에 물을 묻혀 꼭 짠 다음 책을 닦는다.
그런 다음 햇살이 쨍쨍한 데크에 내놓고 햇살바라기를 시킨다.
햇살바라기 시킬 때의 기분은 내 마음까지 햇살 아래 널어놓은 기분이다.
그 옆에 앉아 농사 일을 놓고 잠시 나도 햇살바라기를 한다.
수지침처럼 온 몸에 햇살이 꽂힌다.
그건 저 책을 읽을 기쁨을 잠시 조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다음 새로 산 헌책 중에서 읽을 우선순위를 정한다.
한 권의 책이 먼저 선택되어 지고 나머지는 내가 아직 읽지 않았거나, 머지 않아 다시 한번 읽을 책 등을 따로 꽂아놓는 책꽂이에 꽂는다.
이 때는 농부가 창고에 한 해 농사지은 곡식을 쌓아놓는 일과 견줄만 하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만큼은 내 의식이 아무리 곤죽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나를 소나무가 울창한 계곡으로 안내한다.
눈은 노래하고, 솔바람은 폐부로 스며들어 마음에도 솔바람을 일으킨다.
그러니 내 인생길을 조용하고 담담하게 갈 수 있게 옆에서 늘 응원해주는 친구가 책과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옆자리에는 어떤 친구가 자리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