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아낙의 귀농이야기
이 낯선 곳으로 귀농한 지가 올해로 18년차다.
내가 귀농한 이곳 경북하고도 울진에는 피붙이 하나 없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누구 하나 내 편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곳이라고 번역하면 된다.
그런 곳에 처음 와서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모든 것이 서먹서먹했고, 가끔씩 서러웠다.
서러운 이유는 시골이 일가친척이 모여사는 구조인 경우가 많으니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사안을 놓고 합리적이냐, 진실되냐 라는 등의 잣대로 판단하기 보다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가끔은 사람 때문에 서러웠고, 가끔은 원통했고, 가끔은 속이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만 있었을까.
누군가는 나의 안색에도 손을 내밀어 주었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져 있는 나의 등을 두드려 준 사람, 나의 허물어진 안색에 놀라 먼 길을 다시 달려 와준 사람, 무조건적인 응원으로 가슴벅찬 적도 많았다. 전체적인 '인연'을 놓고 보면 사랑이 차고도 넘쳤으니 난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처럼 우리 산골가족이라면 무조건 응원해주고 용기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의 귀농생활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었다.
병풍과도 같은 인연들이 없었다면 나의 귀농생활은 애저녁에 글렀을 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인연 중 한 분인 부부와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물론 울진 토박이신 부부이다.
가끔 비오는 날,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 없는 날) 함께 저녁을 먹으며 농사 이야기도 하면서 지내는 인연이다.
우리 부부라면 늘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덤이다.
예전에 이곳 군의원을 하셨던 분으로 인품이 개나리처럼 포근한 분이라 형님, 형님하며 우리 부부가 따르는 분들이다.
읍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집에 들러가란다. 줄게 있다시며...
우리 손에 들려주신 것은 유정란 한 판이었다.
도시에 나가 있는 아들가족이 오면 주기 위해 닭을 직접 키우고 있다고 하셨다.
닭이 알을 하나씩 낳으면 하나하나 모았다가 아들가족이 오면 실려 보낸다고 하셨다.
겨우겨우 한 판 모아놓은 것을 죄다 우리를 주신 것이다.
산골에서 반찬 없을 때 시장가기도 어려우니 후라이라도 해먹으라며 손 위에 올려주셨다.
계란 한 판이지만 그 부부는 내게 최상의 것을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으리으리한 선물을 받아야 감동하는 게 아니다.
나의 귀농생활을 염려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응원가를 불러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면 내게는 최상의 선물이다.
귀를 가까이 대고 "계세요?"라고 불러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럼 "잠깐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한 다음 금방이라도 계란을 깨고 노란 병아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노란 눈부신 사랑이 부활할 것만 같다.
그 계란으로 초보농사꾼이 좋아하는 계란찜을 했다.
새우젖으로 간을 하고 양파와 당근, 파도 송송송 다져서 넣었다.
집안 가득 구수한 냄새가 구석구석에 박힌다.
애정이 빈틈 가득 들어차는 기분이다.
계란을 깨어 내가 좋아하는 전설의 '파이렉스 커피잔'에 담았다.
옛날 시골할머니댁에서 먹어본 걸 기억해내어 참기름에 소금 몇 알 뿌리고 날로도 먹었다.
계란을 날로 먹을 수 있는 일이 흔한 일인지...
항생제 먹이지 않고 넓은 공간에서 키운 유정란이라 가능하다.
하루 해가 또 지고 있다.
저녁을 먹고 마당에 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들도 다 알고 있다는 듯 노릿노릿한 미소를 머금는다.
별을 보고 있으면 천지간의 아득하고, 등 따수운 사연과 인연들이 서로 달려드는 것 같아 아찔하다.
산골 다락방에서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