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명절증후군이 사라졌다.
5인 이상 집합 금지 연장이 가져다 준 평화
5인 이상 집합 금지 연장!!
설 연휴를 앞두고 집합 금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었다. 예상대로 설 연휴까지 집합 금지는 연장이 됐고, 이미 6인 가족이 사는 시댁에서는 이번 연휴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맏며느리다.
일 년에 4번의 제사와 2번의 명절. 아직 시어머니께서 직접 제사를 모시기 때문에 나는 당일에 음식 준비만 도와드리면 된다. 올해는 집합 금지 여파로 3번의 제사를 모두 불참했다.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는 게 마음에 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사를 안 지낸다는 자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슨 명절증후군이냐고?
결혼 후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예민해지고 가슴이 답답했다.
10년간 명절증후군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시댁에 친척들이 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전날 차례음식 준비하고, 명절에 함께 먹을 음식 준비하는데, 심지어 다른 집들에 비하면 양도 별로 많지 않은데 내가 무슨 명절증후군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것을 몸은 알고 있었다. 맏며느리라는 자리가 만들어낸 부담감일까?
생각해보면 시부모님은 항상 나를 배려해주신다. 늘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시댁이 불편할까? 명절이 가까워 오면 시아버지는 늘 예민해지신다. 더 이상 예전처럼 시끌벅적하고 잔치 분위기 나는 명절이 아니어서 일까?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걸까? 동생들과도 멀어져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연휴에, 장남의 도리를 다하며 늘 조상을 모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조상덕이니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아버님의 예민함은 집안의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가족 모두 가라앉은 공기에서 혹시나 불똥이 튀어 잔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긴장하며 하루 종일 지내니 더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의 불편함을 아이들도 느끼는지 친가와 외가에 갔을 때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친할아버지 앞에서는 눈치 보고 얌전하게 말 잘 듣는 아이라면, 외가에서는 마음껏 장난치며 재롱떠는 아이로 변한다.
이번 명절에도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내려지자 시부모님은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말씀은 그리 하셨어도 얼마나 아들과 손주가 보고 싶으실까 싶어서 신랑이라도 혼자 다녀오거나, 아니면 나라도 혼자 가서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와드리려고 했었다. 오지 말라고 안 가는 마음도 그리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절이 시작되기 전날, 남편 회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방문해서 전 직원은 가급적이면 명절에 외부 접촉하지 말라는 회사 권고가 있었다. 남편은 검사대상은 아니었지만 한 공간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셀프 자가격리를 하기로 결정했고 (다행히 검사대상 직원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시댁에 못 가는 이유가 분명해지자 내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
시댁을 안 간다고 마음껏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식구들과 연휴기간 먹을 음식 만드느라 하루 종일 요리하는 것은 똑같았다. 명절이랍시고 평소에 안 하던 메뉴들을 만들어 내느라 애먹었지만 그래도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힘든 것도 모르고 즐겁게 했다. 먹고 쉬고, 오랜만에 뒹굴거리며 아이들과 영화도 보고, 여유 있는 연휴였다. 처음으로 연휴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던 명절이었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 이번 명절에는 명절 증후군이 없었다.
그동안에는 연휴 시작 전부터 심리적 부담으로 잠못이루었고, 연휴 중에는 긴장감에 일을 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피곤해서 2일 정도는 누워서 쉬어야 했다. 친정, 시댁 모두 차로 30분 거리에 사시는데 시댁서 에너지를 다 쏟고 오면 너무 피곤해서 친정에 가면 밥 한 끼 먹고 바로 집으로 온다. 친정부모님은 이런 나에게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명절 아니라도 아무 때나 맘만 먹으면 볼 수 있는 거리라며 그때 편하게 실컷 보자고 말씀드렸다.
코로나로 힘든 1년을 보내면서 이번 연휴를 통해 유일하게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제 명절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보면서, 처음으로 명절증후군을 느끼지 못했던 나의 2021년 설날을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