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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Sep 02. 2020

쉬운 서양철학 1

플라톤 VS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동굴에 묶인 채 살아가는 죄수를 묘사한다. 죄수들은 동굴에 묶여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죄수 중의 누군가가 그 동굴을 벗어나서 동굴 밖의 해를 마주하고 그동안 보아왔던 것이 허상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죄수들에게 말하지만 죄수들은 듣지 않는다. 이데아가 밖에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진리란 망각의 부정. 즉 기억의 과정을 통해 발견되는데 이것이 '상기설'이다. 현실의 인간이 에이도스를 상기하는 것, 즉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사실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육체를 가지고는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이데아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제자였지만 플라톤이 말하는 본질을 부정한다. 플라톤은 사물의 본질, 즉 에이도스가 현실 세계에 있지 않고 죽은 뒤 돌아가는 에이도스의 세계에 있다고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은 사물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라톤의 영혼은 육체와는 무관한 것으로 불변하는 실체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이 개체가 소멸되면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를 강조 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체들의 자기 동일성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이것을 읽고 나는 베트남 전쟁 때 남베트남 정권의 불교탄압과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틱광둑 스님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소신공양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불에 타는 그 고통 속에서 전혀 신음소리나 몸부림이 없었다. 불에 타면 몸이 쪼그라들어 허리를 굽히기 마련인데 스님은 그 불길 속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후에 시신에서 손상되지 않은 스님의 심장이 나와 현재 하노이 국립은행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아주 깊은 선정 삼매에 들어가 고통을 잘 느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사례로 나는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이 이데아에 들어가면 육체적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죽은 이후에 영혼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스님의 가르침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것만은 죽지 않은 것이 아닐까? 난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틀렸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고도 정신은 이데아에 갈 수 있다. 죽은 이후에도 그의 정신은 남아있을 수 있다.


플라톤 동굴 묘사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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