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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Dec 22. 2020

[에세이] 그 아이

아이와 나는 교생실습 때 처음 만났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 아이는 내가 가르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사춘기 남학생의 호기심으로 열심히 내 이름을 검색하여 미니홈피까지 찾아와 글을 남겼다.


그 뒤로 졸졸 따라다니며 내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했다. 아이는 세상에 대한 설움과 분노를 오토바이를 타며 풀었다.


아마도 그런 점으로 인해 오토바이 타는 선생님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아이는 자주 다쳤다.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고, 손바닥이 찢어졌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게 전화를 했다.


당연히 선생인 나는 전화를 받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혼냈다. 그렇게 혼나면서도 아이는 꼬박꼬박 전화를 했다.  


아마 그렇게 혼내줄 사람도, 전화를 받아줄 사람도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일 년 전, 아이에게 청담동 뒷골목에서 화류계 아가씨들의 운전기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화가 났다. 난 선생이었기에. 아이에게 그런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돈을 조금 벌더라도 나중에 미래에 창피하지 않을 일을 하라고.


잠깐 해서 돈만 모으고 그만두겠다는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아직 어리고 앞길이 창창한 아이가 고생은 모르고 쉬운 길만 가려고 한다면, 결국 실패하게 될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그 시기에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 아이도 그럴 거다. 지금 내가 뭐라고 하던,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을 거다.  


알면서도 화가 났다. 그리고 회의를 느꼈다. 선생이란 사람이 제자 하나 계도하지 못하다니...

그러면서 마음속에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분명 그렇게 혼나면서도 나를 찾는다. 힘들 때마다 전화하고, 기쁠 때마다 알려준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아이는 내게 의지하고 있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 아이를 바른길로 이끌고 싶지만 아이는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을 바란다.  


난. 자격 없는 교사가 아닐까.  


그러나 아이에게는 기댈 곳이 없다.  


아이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본 여자와 외도를 해서 낳은 사생아였다.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이가 어릴 때 일본에서 사고로 돌아가셨다.


오갈 데 없던 아이는 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복형제인 큰아버지를 찾았고,


그렇게 한국의 큰아버지 집에 입양되었다.  

서툰 언어. 일본인이라는 놀림. 부모가 없다는 외로움.


그 수많은 감정들을 견디고 또 견뎌봐야 아이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외로움과 허무함을 오토바이로 달랠 뿐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야기를 들어주고, 부모처럼 가끔 잔소리도 하는 것일 뿐.  


그러던 도중,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책을 쓰신

마즈타니 오사무 선생님의 일화가 떠올랐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또 같은 잘못을 하고, 같은 실수를 하고, 선생님을 또다시 힘들게 했다.


심지어는 돌보던 아이가 자살을 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좌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뀌던 바뀌지 않던, 선생님에게 그들은 소중한 제자일 뿐이었다.  


원조교제를 했다고? 괜찮아. 도둑질을 했다고? 괜찮아. 강도짓을 했다고? 마약을 했다고? 괜찮아.  

선생님은 한 소년을 야쿠자 조직에서 빼내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

선생님은 한 약물중독 소녀를 끝까지 이끌어 나중에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도왔다.  

지금 당장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학생들을 믿었던 그 마음이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그렇게 그들을 끝까지 믿어준 선생님의 노력에 그들이 변화되었다.

변화의 원동력은, 계도가 아니었다. 훈화가 아니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변하던 변하지 않던.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기로 했다.  


난, 진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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