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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Feb 01. 2021

[에세이] 구토

그는 한눈에도 값비싸 보이는 슈트에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머플러를 두른 모습으로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마치 조선 후반 학자들이 썼을법한 클래식한 안경에 가슴팍에는 포인트 부토니어 코르사주까지. 꽤나 신경 쓴 차림새였다.



우리는 레스토랑의 예약된 자리에 앉으며 식상한 안부를 나누었다.



- 잘 지냈어? 오늘 예쁘네



- 덕분에요. 어제 프라이빗 파티는 못 가서 죄송해요. 잘 치르셨어요?



- 당연하지. 끝내줬다고. 어제 누가 왔었는지 알아?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레이싱모델. 얼굴을 갈아엎은 인조미인 스타 변호사. 마치 이런 여자들도 왔는데 네가 초대받았던 것은 영광이었음을 알라는 뜻인 듯했다.



- 다들 멋지시네요



- 그렇지? 아~주 끝내줬어.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라고-



그는 다시 차례로 스마트폰의 앨범을 넘겼다. 유명 법조인들의 사진 다음에는 내가 아는 너무도 유명한 정치가의 얼굴이 보였다. 당대 최고 미인이었던 탤런트 아내를 둔 바로 그분.



- 이 형님이랑도 친하거든. 동문이야~ 기회 되면 내가 식사자리 한번 마련할게. 소개받고 싶지?



이런 거물급 인사들을 인맥으로 가진 대단한 인물이니 잘 보이라는 거들 먹이 었다. 나는 순간 왠지 모를 화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가라앉히고 차분히 말했다.



- 재미있네요. 이런 곳에 초대받는 남자들은 다들 재력가이거나 권력 가고. 초대받는 여자들은 다들 예쁜 사람들밖에 없네요.



- 그렇지. 대단하지 않아?



- 오라버니는 인맥형성 파티라 하시지만. 가서 나누게 되는 대화는 어떤 걸까요? 레이싱 모델과 정치와 철학. 재무설계 이야길 하실 건가요?



- 뭐~ 여자 기업가들도 초대하기는 했었다고. 그 사람들이 안온 거지.



- 저 같아도 안 가고 싶을 것 같네요ㅎㅎ가봐야 꽃병에 꽃 노릇밖에 더 하겠어요. 애초부터 비슷한 관심사로 묶인 모임이 아닌 이상. 목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 보이네요.



- 자본주의 사회에선 당연하잖아~ 그게 뭐 이상한 거라고..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고는 식은땀이 흐르는지 테이블에 놓인 티슈를 찾았다.



- 저는 그래서 그런 파티 잘 안 가요. 그런 취급받기 싫거든요.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쌓이면 그에 맞게 인맥이 생기겠죠.. 지금은 불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살짝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 자, 들어. 오늘 스테이크가 좋네.



나는 퍽퍽한 스테이크를 입안에 구겨 넣으며 생각했다.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나 또한 이기적인 속물이라서일까.



그동안 난 남들보다 조금은 나은 외모로 혜택을 누리는 것을 당연시 여겼고 은근슬쩍 자랑해왔었다. 또 한 달 뒤에 있을 외국인 VIP들이 오는 프라이빗 파티에 영어 통역으로 참여한다며 스스로 떠벌리기도 했잖은가.



꽃이라서 좋은데 꽃으로 대하지 말라.


꽃으로 대하되 꽃병에 꽂아두지 말라.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일까.



그의 곱슬머리에 바른 왁스가 꽤나 끈적해 보였다. 기름진 그의 두 광대뼈가 그가 스테이크를 씹을 때마다 옴싹 거리며 움직였다. 크림 파스타의 느끼한 소스가 내 입술 언저리에 흐르는 듯하다. 나는 티슈로 입술을 꾹꾹 눌러 닦으며 생각했다.



구토가 나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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