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해 보는 오성과 한음] 37

37. 영창대군 제거 모의 사건

by sophia p

임해군을 강화도로 귀양 보낸 뒤에도 조선의 정세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1년 후 임해군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사건은 당시 권력 투쟁의 거대한 파도 속 한 장면에 불과했습니다. 광해군의 친형이 역모죄로 유배되었다 의문사하자 조정 안팎에서는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이 죽음은 광해군의 왕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임해군의 죽음은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정 내에서는 어린 영창대군마저 제거하자는 주장이 다시금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광해군의 정통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반대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북인 세력의 공작이었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도 팽팽하게 맞서며 조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대의명분을 외치지만 실상은 잔인한 권력 게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심각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오성과 한음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이 극단적인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지혜롭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시 대신들 사이에서는 "전하께서는 결단코 결심하지 마시고 훗날 임해군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라며 영창대군 제거를 강하게 주장하는 상소문이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오성과 한음은 달랐습니다.


오성은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을 해하는 것은 백성들의 지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왕권의 정통성마저 위협하는 행위임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는 "왕이 자신의 이복동생을 해하는 것은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직언했습니다. 한음 역시 오성의 뜻에 동의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연명(連名)의 상소를 통해 영창대군에 대한 극단적인 처분을 반대하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이는 그들의 오랜 우정과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감히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화는 조선 말기 권력 다툼이 단순한 권력 쟁탈을 넘어 어떻게 인간 관계와 의리 그리고 개인의 존엄성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와 윤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음과 오성은 권력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개인의 존엄과 우정을 지켜낸 역사 속 진정한 군자였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진실과 정의를 향한 인간의 변함없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불의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논어에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 군대의 총사령관은 빼앗을 수 있어도 한 사내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영창대군 사망을 둘러싼 살벌한 정치적 압력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오성과 한음은 자신의 뜻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높은 지위를 내려놓을 각오로 불의에 저항하며 바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아무리 강력한 외부 세력도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굳건한 의지와 정신력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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