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영창대군 사망과 계속되는 정치적 격변
영창대군은 어머니 곁을 떠나기 힘들어했습니다. 광해군은 힘이 센 궁녀 열 명을 시켜 영창대군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인목대비는 통곡하다 기절하고 영창대군도 목이 아플 정도로 울었습니다. 그렇게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귀양하고 겨우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어머니와 아이가 강제로 헤어지는 이 장면은 참담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당시 사건 현장에는 바늘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음의 처벌이 계속되고 조정은 매일같이 죽이니 살리니 하는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한음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병이 깊어질수록 밖으로 나가 용진에서 머물렀고 먹지도 않고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한음은 오성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술을 많이 마셨고 여기도 아픈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 압박이 몸으로 번져 ‘화병’이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음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음이 전해지자 관리와 군인 상인 백성들이 모여 조문했고 누구보다 슬퍼한 이는 오성이었습니다. 은거 중이던 오성은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대령할 때에 도착했습니다. 다섯 살 아래로 귀엽게 여기던 동생이자 친구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원통하고 분하지 않을 리가 없었습니다. 한음의 아들 여벽은 오성에게 아버지의 묘지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오성이 쓴 묘지는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합니다.
오성은 자신의 가슴을 쳐가며 후회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는 곡하는 것을 멈추고 일기를 쓰며 슬픔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나 몰래 말하고 숨겨 써서 묘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한음을 배웅했습니다.
이하에 한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항복이 지은 시가 있습니다.
「궁벽한 산골에 떨어져서 입 다물고 있으려더니
淪落窮山舌欲掩
목소리 죽여 남 몰래 한원군을 곡하노라.
吞聲暗哭漢原君
만사를 쓰면서도 감히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哀詞不敢分明語
각박한 풍속이 남 엿보아 말 만들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薄俗覷人喜造言」
이 시는 당시 사회의 무자비함과 음모를 비판하며한음을 향한 깊은 안타까움을 담고 있습니다.
논어에서 「義以為質 禮以行之(의이위질 예이행지)」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의리를 본질로 삼고 예로써 그것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한음과 오성은 권력 투쟁과 난세 속에서 의리를 잃지 않고 예의를 갖추며 서로를 배려했습니다. 그들의 깊은 우정과 신뢰는 이 가르침을 실천한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