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해 보는 오성과 한음] 마지막 화

43. 시대를 넘어 계속되는 오성과 한음 전설

by sophia p

광해군 시대의 막바지에 인조반정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일어났습니다. 광해군은 제주도로 귀양 보내졌습니다. 광해군을 지지하고 왕으로 추서했던 정인홍과 이이첨은 처형당했으며 그들과 함께했던 이들 또한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억울하게 배척받았던 이들은 복권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원익은 다시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세상을 떠난 오성과 한음에게는 시호가 내려졌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올곧은 언행으로 선비의 도리를 지켰기에 충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인조의 시대도 혼란과 혼돈이었지만 오성과 한음은 특정 정치세력을 넘어 시대정신과 인간적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설에는 왜곡과 미화가 자연스레 섞였습니다. 인조 말기의 우의정 서경우는 한음이 30살 전에 재상이 되었다는 설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바로잡았습니다. 정조는 《홍재전서》에서 오성과 한음을 소설과 우스갯소리로 다루면서도 그들의 충성과 인간 됨됨이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특히 한음의 충성심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하면서 실패할 경우 중국에서 뼈를 묻겠다는 굳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정조는 훌륭한 신하를 길러 나라가 번성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오성과 한음에게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시대의 뛰어난 신하는 오성과 한음으로 대표되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일 재주 문학적 업적 유머까지 모두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후대에 들어서 오성과 한음이 어린 시절부터 절친이었다는 이야기가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종 시대 여러 신하들과 만난 강연에서 나온 후손의 증언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종 당시 학자들의 기록과 후손들은 오성과 한음의 우정을 사실보다 좀 더 아름답게 왜곡해 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작가 고종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의 진실과 전설이 섞여 전해짐을 언급하며 민간에 널리 퍼진 이야기가 반드시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음을 알렸습니다.


고종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오성과 한음은 과거시험장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다는 설이 맞습니다. 실제로 오성이 한음보다 다섯 살 많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들은 점차 변화하며 코흘리개 시절부터의 절친으로 둔갑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와 사람들의 바람과 기억이 어우러져 신화처럼 가공된 결과물이었습니다.


논어에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는 것이 군자의 도다’라는 뜻입니다. 오성과 한음은 시대의 오해와 왜곡 속에서도 굳건한 원칙과 의리를 지킨 군자였습니다.


오성과 한음 두 사람의 우정과 삶은 진실과 전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꾸준히 전해지며 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간애와 지혜를 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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