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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Sep 05. 2020

쉬운 서양 철학 9

헤겔 VS 마르크스

근대 사회는 신이 지배하는 사회 그래서 영원할 것 같았던 중세 사회가 붕괴되면서 출현하게 되었다. 이런 근대 사회에서 신을 대신하여 세계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권좌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인간과 그 이성이었다.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가 출현하는 것을 목도한 뒤, 오직 인간의 이성만이 진정한 역사의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헤겔이다. 헤겔은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지금 서울의 경복궁이 내 눈앞에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며 서 있다고 해보자. 이것이 바로 ‘현실적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경복궁이라는 것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정신’이 외적으로 실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헤겔에게 ‘이성’이나 ‘정신’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힘으로써 사유되었다. 이성이나 정신을 통해 인간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앞 시대의 문명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명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세계정신이라는 거대한 반성의 힘이 개인의 정신을 매개로 작동했을 때에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개인의 정신은 세계정신의 한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역사와 관련된 헤겔의 최종 진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은 현실과 관련되어 정신이 가진 두 가지 계기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 순응이다. 군대에 입대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우선 군대의 모든 현실, 즉 그 관습, 풍속, 사유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거기에 순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헤겔이 말한 “정신이 개별성으로서의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다. 다음은 저항이다. 군대에 적응한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거대한 현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객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이경우 정신은 군대라는 현실의 여러 요소들 중 일부를 자기에게 적합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헤겔이 말한 “정신이 일반성으로의 자기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다.

순응과 저항!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는 항상 이러한 메커니즘을 겪기 마련이지 않는가? 먼저 어린아이는 부모 나아가 학교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현실적인”규칙에 순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현실적인” 규칙들을 자기에게 맞게 이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더 아이의 “이성적인” 자기 활동은 현실적인 규칙들을 변모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정신이 성장하는 ‘정신현상학’ 아닌가. 개인의 자기 극복 과정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개인의 공동체를 바꾼다. 헤겔이 “개인이란 세계정신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다. 순응하는 개인이 특정 공동체의 규칙을 내면화한다면 저항하는 개인은 그 규칙을 합리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헤겔의 철학이 문제가 되는 점은 헤겔이 부르주아 근대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야말로 정신의 최종적인 현실화의 모습이라고 평가하는 데 있다. <<자본론>>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과거의 헤겔이 관념적인 변증법을 주장했다면 자신은 물질적인 변증법 즉 유물 변증법을 옹호한다고 밝히면서 헤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다. “헤겔에게는 사고 과정이 현실 세계의 창조자이고 현실 세계는 외부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두뇌에 반영되어 사고의 형태로 변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역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유했기에 이처럼 헤겔의 역사관을 비판하게 된 것일까?

생산력이 점차 발달되면서 과거 중세 사회를 지탱하던 정신적 관계와 소유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출현하게 된 사회가 바로 부르주아 사회였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생산력을 극한까지 발전시키면 부르주아적 소유관계 역시 결국은 철폐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생산력 발전이 중세의 소유관계를 철폐했을 때 부르주아 사회가 자연스럽게 출현했던 것처럼 생산력 발전이 이제 부르주아 사회의 소유관계를 철폐시키면서 또 다른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사회를 낳게 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은 머지않아 보드리아르 등에 의해 비판받게 된다. ‘생산’보다는 ‘소비’가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 즉 유통의 영역이야말로 그 이후의 생산과정을 보장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것, 이것은 마르크스 본인도 이미 받아들였던 관점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왜 생산 중심주의만 표방했던 것일까? 그는 혁명에 대해 몹시 주저하고 있었던 노동자들에게 역사는 그들의 편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칸트의 신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코뮤니즘은 현재에 존재하는 혹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실천을 규제하는 이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해 이것은 서유럽의 사회 민주주의자들이나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일국 사회주의자들의 치명적인 착각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설명해 준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코뮤니즘’을 ‘구성적 이념’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생산력이 일정 정도에 도달할 때까지 인간의 자유로운 실천을 유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불길한 조짐을 이미 직감하고 있던 마르크스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부정했던 마르크스주의자는 사회민주주의자를 가리키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국가기구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주의를 도모하겠다는 생각이다. 한마디로 자본가 계급에 더 많은 세금을 걷어 그걸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회민주주의는 두 가지를 전제하고 있다. 하나는 자본/노동이라는 자본주의적 위계구조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정치적 위계구조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단코 자유로운 공동체라는 이념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헤겔의 철학에서 개인의 희생으로 법이 바뀌게 된 사건이 생각났다. 지난 2003년 회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년 여성이 노숙자에게 등을 밀려 선로에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성이 추락한 시점은 지하철이 1~2 미터 앞에 다가온 시점으로 그녀는 피할 겨를도 없이 지하철에 치여 사망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그녀의 남편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의무화를 주장했고 마침내 법이 바뀌었다. 그는 잠든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 여보 신문 봤어? 당신은 고통스럽게 갔지만 그게 헛된 죽음은 아니었나 봐.”
우공이산을 실제로 있게 한 인도의 실화 영화도 생각났다. “더 마운틴 맨”이다. 아내가 쓰러져 병원에 가야 했는데 산 너머에 병원이 있어 지체하다 아내가 죽었다. 그러자 남자는 다짐한다. 산을 헐어서 마을 사람들이 더 가 끼어서 병원에 가게 하겠다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나중에 그가 해낸 걸 보고 손뼉을 쳤다. 그의 행동이 역사를 만든 것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그가 생각한 사회는 노동자가 대우받는 사회였으리라. 그러나 애먼 사회 민주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자를 표방하려고 하니 오죽하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스스로 했을까 싶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간다. 이것이 마르크스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루메르 18일>>에 등장하는 말이다. 최근에는 유럽에서 '사회적 자본주의'로 세금을 늘리고 복지를 강화해 가는 방법으로 사회주의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칼 마르크스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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