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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Sep 05. 2020

쉬운 서양 철학 8

피히테 VS 니체

피히테는 인간이 사유하지 않으면 본질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 사유는 오직 자기의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칸트에게 자기의식은 '생각하는 ' 정도의 의미였지만 피히테는  자기의식을  체계적으로 확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인간의 모든 경험적 의식을 포괄하는 것이다. 자기를 의식한다는  그것은 기억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자체, 표상, 오성, 감성, 이성  칸트의 개념을 가볍게 제쳐두고 피히테는 직접 자기의식을 설명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것은 대상의 동일성에서 바로 자아의 동일성으로 이행하는 방식이다. 피히테의 간결한 공식은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좋을  같다.  (과거)=(현재) 가능해야만 A(과거)=A(현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기의식은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와 '같다'라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의식이란 것은 기억의 능력으로 요약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피히테의 지적은 유의미한 면이 있다. 기억 혹은 자기의식이 없다면 우리는 친구를 만나도 친구인  모를 것이고 애인을 만나도 애인인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망각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기억능력에 대한 비판을 개시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기 위해 우리는 위를 비워야만 한다. 그럼에도 먹었던 것을 배설할  없는 소화불량에 걸린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없게  것이다. 니체는 정신도 육체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의 기억들이 정신에 가득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니체가 인간이 가진 기억 능력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자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철저한 기억의 망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니체가 원했던 것은 아니다. 일시적인 기억은 우리의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다른 기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낙타를 예로 들었다.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짝이 없는  사막에서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낙타가 사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사자가  낙타는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 그러나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낼 수는 없다.

다만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사자의 힘은 그것을 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말해보라. 사자조차   없었던 일을 어떻게 어린아이는 해낼  있는가?  사자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가?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정신은 이제 자기 확신의 의지를 원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자기 변형의 최종 단계로 '어린아이' 설정한다. 사실 니체가 낙타에서 사자로의 변형을 강조했던 이유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자유의 쟁취"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망각이란 우리가 자신의 본질적인 '힘에의 의지' 긍정하는  가지 계기였다고   있겠다.

좋은 기억력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나는 재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 하나하나 옷차림 하나까지 기억하다 보면 상대와의 대화에서 왜곡된 기억을 발견하고 만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까  멈추곤 한다. 그에 반해 내게 불리한 기억은 재빠르게 지워지곤 한다.  아이러니하다.

니체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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