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 개인전
드로잉 캔버스로 천장까지 채워진 전시장에 들어서자 아주 짧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PKM 갤러리는 보통 갤러리들에 비해 높은 천장을 가진 편인데 층고 2,3개를 이어 높어진 벽을 친근한 페인팅들이 가득 채우고 있으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오늘, 이 그림들을 보지 않았다면 어떤 상태였을까 여러 번 생각 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
백현진의 작업은 이번 전시 제목(노동요 Work songs)만큼이나 고요한 갤러리 공간에 활기를 더한다. 페인팅 유닛들은 시각적이고 음악적인 리듬을 머금었는데, 각각의 유닛이 독립적으로도, 또 어떤 다른 유닛들과도 무작위로조합 될 수도, 다시 해체 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상하좌우도 없으며, 불균형한 모습이지만 온통 생동감이 넘친다.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퍼뜩 그려질 때가 있다.
추울 때 봤던 흙바닥,
그리고 골목길에 버려진 가구들 중 매트리스가 떠올랐고,
그 이미지가 조금씩 변형되며 머릿속에서 영상처럼 재생됐다.
생각보다 단순하다.
흙을 봤고, 원체 눕는 것을 좋아해 매트리스를 가깝게 느꼈으며,
물 흐르듯 흘러가는 생각 속 물결이 떠올랐다.
이 제각기인 단어를 감쌀 수 있는 바구니가 없을까 생각하다 노동요가 떠올랐다.
백현진 인터뷰 중
봄이 오는 것이 느껴진다는 느낌은 이런걸까?
다양한 색과 선을 사용해 친근하고 둥글뭉실한 작업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오랜 친구의 끔찍한 사고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일생일대의 상처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누구에게나 생채기 쯤 다 하나둘씩 있겠지만. 그래서 이토록 유쾌한 드로잉 잉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부정적인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음직한 약간은 어두운 그림들. 이를테면 '홀로, 2019'라든지 '엿같은, 2018', '복수는 없다.2018' 의 경우에도 (인생이 주는 수많은 종류의 상처들의 상대적 크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개인의 정도차이에 비교해 볼 때,) 그 어두움의 정도가 고작 생채기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데 자꾸 보면 볼수록 모든 색과 선들의 어우러짐이 마냥 밝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우린 어쩌면 이 오묘한 그림들처럼 유쾌하면서도 우울을 감추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사람도 그런 면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매사에 유머러스하기만하고 활기차기만 한 사람은 곧 지치기 마련이고, 반대로 매사에 미간을 찌뿌릴 정도로 부정적인 사람에게서는 도망치고 싶어 진다. 모든 감정의 면면들을 때에 따라 적절히 드러내는 순간 사람들은 유혹을 느끼는데, 백현진의 페인팅들이 꼭 그렇다.
예전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노동요가 흘러나왔는데 자꾸 떠올랐다.
정확한 정의를 알고 싶어 찾아봤더니
‘적막감을 벗어나서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 식으로 나오더라.
그런데 나는 적막감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려고 흥얼거린다.
이런 노동요도 있으면 저런 노동요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적막감을 유지하는 노동을 위한 나의 노래’라는 측면에서 접근했다.
백현진 인터뷰 중
백현진 Bek Hyunjin
백현진은 화가, 설치미술가, 행위예술가, 음악가, 배우, 감독,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는 예술가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한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플라토, 아트선재센터, 성곡미술관, 상해 민생 현대미술관, 쿤스트할레 빈 등 주요 미술 기관의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7' 후원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그는 한국 인디밴드 1세대인 '어어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팀 '방백'의 멤버이자 솔로 가수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영화 <북촌방향>, <경주>, <그것만이 내 세상>과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 속의 개성 강한 배우로서 전방위적 예술 활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Pkm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