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브로타에르스 회고전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브로타르스의 회고전을 나는 지금도 매일같이 떠올리곤 한다.
전시장에는 언제적부터 말라비틀어졌는지 모르는 두 갈래로 열린 홍합 껍데기들, 각기 다른 모양으로 금이가고 깨진 달걀 껍데기들이 가득했다. 껍데기. 껍데기. 껍데기였다. 옷 껍데기, 빈 껍데기, 달걀 껍데기, 홍합 껍데기, 병 껍데기, 비닐 껍데기, 냄비 솥 껍데기, 프라이팬 껍데기, 종이 껍데기, 글자만 남은 껍데기.
알멩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알멩이는 곧 부패하지만, 껍데기는 영원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껍데기들이 있음에도 그는 왜 유독 홍합과 달걀 껍데기에 집착했던걸까. 알맹이를 떠나보냈음에도, 그 형태가 거의 살아있기 때문일까. 알멩이 없이도 홍합은 여전히 짙은 바다의 무지개빛으로 빛나고, 달걀은 그 순박하고 깨끗한 색을 유지하기 때문이겠지. 껍데기에는 그의 기억들이 투영되는데 거기에는 그의 어머니, 할머니. 모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껍데기가 썩어 없어져도 여전히 끈적이는 관계들에 대한. 매혹적인 한편의 이야기같은 전시였다.
마르셀 브로타에르스 Marcel Broodthaers
간결한 아이러니와 비평적인 눈으로 마르셀 브로타에스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부정(否定)의 전략들을 가지고, 제도적이고 경제적인 제도 내에서 미술가의 역할은 무엇이고 또 미술의 기능은 무엇인지에 대해 예리한 질문들을 던졌다. 브로타에스는 처음에 시인으로 시작했는데, 1963년에 미술을 택하면서 시를 포기했다. 첫 미술 작품인 <비망록>(1963)은 50권 정도 남은 그의 마지막 시집들을 회반죽 안에 파묻어 고정시킨 것이다. 이 작품은 문자와 미학 사이의 긴장 상태를 보여준다. 즉 시각적 오브제인 시집들은 읽을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시집들을 제거한다면 그것은 이 작품의 '조각적인 면'을 파괴하는 것이 되고 만다. 현대 미술이론에 정통하고 르네 마그리트와 마르셀 뒤샹 같은 미술가들의 작품에 매료되었던 브로타에스는 언어와 미술 표현에 관한 일반적인 가설들에 의문을 품고 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1968년에 그는 자신의 미술관을 세웠다. 상설 전시품도 없었던 이 미술관의 활동은 불규칙적이었으나, 문화가 소비되는 일반적인 방식을 꾸준히 전복시켜나갔다. 1972년에 브로타에스는 수백 개의 오브제들을 도입했다. 이들 중 일부는 미술 콘텍스트에서 따온 것으로, 각각에는 독수리 문장이 표시되어 있다. 이 오브제들은 각각 다음과 같은 라벨이 붙여진 채 공공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이것은 미술 작품이 아니다." 브로타에스는 미국의 국장(國章)이기도 한 독수리 문장을 넣음으로써 미술과 권위, 권력과의 관계를 나타냈다. 한편,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오브제들을 한데 묶음으로써 미술이 어떻게 역사적, 기능적, 지리적으로 관련이 없는 오브제들을 통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브로타에스는 완전한 허구를 통해 진실의 진면목을 드러내었다.
"예술은 권련의 표시로 부르주아의 성벽 위에 걸려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술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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