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떠 있는 침대'와 '단지 몇 번 찔렀을 뿐'
아름답고 빛나는 것 만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않는다. 때로는 추하고 어두운 것이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면 이 이야기가 사실임을 알 수 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중 특히 두 그림은 나에게 의미가 깊다. 그중 첫 번째가 ‘떠 있는 침대’(1932)이다. 이 그림은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여자의 고통이 너무 잔인해 보여서 마음이 불편해질 수 있다. 프리다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찾자면 그녀의 성장배경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프리다는 원래 화가가 아니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그녀는 꽤나 공부를 잘하는 의학도였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은 후, 그 고통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화가가 되었다. 병실에 누워 그림을 그리면서 사귀던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고 그 후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화가 디에고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하지만 둘은 그리 잘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었다. 디에고는 여성편력이 심한 사람이었고 나이도 프리다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들은 프리다와 디에고를 비둘기와 코끼리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프리다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도와주는 디에고를 사랑했다. 그 사랑은 프리다를 또 다른 절망에 빠뜨린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프리다의 몸은 임신이 힘든 상태였지만, 아이를 원했던 프리다는 임신을 시도했고 계속되는 유산으로 힘들어했다. 그런데도 디에고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으니 프리다의 심리적 고통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 그림에는 프리다의 절망적인 아픔이 잘 나타 있다.
나는 첫 아이가 3돌이 지날 무렵 둘째를 임신했었다. 그 아이의 태명은 ‘랄라’였다. 아이가 즐겁게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지은 태명이었다. 하지만 태명을 짓자마자 담당의사는 아이가 태어나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그런지 자세한 설명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위험한 임신을 이어가기보다 조기 출산을 권유하는 의사의 말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임신 4개월쯤 됐을 때 아이를 죽이는 출산을 했다. 수술실 침대에 누워 주사를 맞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는 아무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첫 아이 때 느꼈던 분만의 고통을 예상했는데 너무 생소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언제쯤 고통이 시작될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주 작은 무언가 몸속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간호사 선생님이 후 처치를 하면서 “눈 감고 계세요”라고 했는데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 핏덩이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슬픔을 느끼게 해 주었다. 모유가 나오는데도 먹일 아이가 없는 것도, 훗 배앓이의 통증과 고열로 인한 아픔도 그때의 고통만큼은 아니었다.
떠 있는 침대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피 묻은 침대시트를 보면서도 아무 아픔이 느낄 수 없었던, 나는 마음도 몸도 허공 내 몸 안에서 빠져나와 병실 어딘가를 떠돌 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멍하게 초점 잃은 눈으로 누워있는 나에게 엄마는 “아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저 명치끝부터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꺽 꺽 거리며 울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모든 슬픔을 쏟아냈다. 그것이 떠나보낸 아이를 위한 나의 마지막 인사였다. 하루를 입원하고 나는 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얼마동안은 딸아이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남편과 아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 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그 안에서 꽁꽁 숨어 고통을 견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떠있는 침대는 타인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내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그림이었다.
두 번째 그림은 「단지 몇 번 찔렀을 뿐」(1935)이다. 이 그림도 보고 있으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림 속의 남자는 곧 떠날 것 같은 모습으로 무표정하게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여자는 왠지 저항 한번 못하고 남자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은 여자를 대신해 남자에게 분노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이 그림의 모티브는 그 당시 세간을 떠들 석 하게 했던 ‘아내 살인 사건’이었다. 아내를 죽인 혐으로 법정에 선 남편은 판사에게 “칼로 몇 번 찌른 것뿐”이라고 변명해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은 당시 힘들었던 프리다의 분노를 자극했던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프리다는 두 번째 유산과 동시에 여동생과 남편의 불륜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디에고는 프리다가 절망에 빠져있을 것을 알면서도 뻔뻔하게 ‘ 나는 한 여성을 사랑하면 할 수 록 더 많은 상처를 주고 싶었다.’라고 고백한다. 그의 악질적인 사랑의 희생양이 된 프리다가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림 속의 여자를 자신이라고 상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프리다와 디에고의 사랑 안에 담긴 어둡고 잔인한 마음이 무겁게 다가온다.
이 그림을 볼 때면 마음이 한없이 차가워진다. 이혼을 통해서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경험을 하면서 고통에 둔감해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이혼하자’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부터 이혼을 피할 수 없겠다고 체념하는 과정까지 나는 며칠 밤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로 인해 운전하다 졸기도 하고, 엄청난 하열과 구토로 욕실에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없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를 보면서 아픔이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전처럼 마음이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고 이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은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하는 거고 이혼은 그 사람 때문에 죽을 것 같을 때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결혼과 이혼으로 그 말의 의미를 몸 소 체험했던 것 같다.
이혼하고 한 참 후 전남편이 “ 우리는 왜 서로 사랑에 빠졌을 까?”라고 물어왔다. 그걸 지금에 와서 묻는 그가 황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그럼 넌 내가 뭐가 그리 못 견디게 싫어서 이혼을 했니?”라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그도 당황해서 웃어버렸고 결국 이유를 찾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에 합의하고 이야기를 그만뒀다. 다만 사랑했던 것도 분명하고 미워했던 것도 분명한데 그 마음의 변화에 특별한 이유가 없고, 그래서 마음이 내 것임에도 내가 어찌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감정적으로 소리치던 모습이 한때는 순수해 보여서 좋았을 것이고, 나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서 다른 여자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프리다는 디에고를 만난 걸 자신의 인생에서 겪은 큰 사고 중 하나라고 했다. 사고는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라 프리다는 평생을 죽을 것 같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끝내 디에고를 놓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도 사랑했던 기억도, 미워하고 증오했던 기억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 기억들은 제멋대로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녀서, 원한다고 해서 사랑했던 기억만 떠오르지도 증오하는 감정만 생기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원하는 마음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프리다는 신이 주신 운명을 최선을 다해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그 운명을 살아낸 여성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그림을 그려냈다. 내가 프리다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도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이유도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