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 사귀는 것을 어려워했다. 나에게 친해지려고 다가오는 친구나,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여중 여고를 거치면서, 예민한 사춘기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종종 발행하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친구사이가 틀어진 경험을 몇 번 겪은 후로는 더욱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어갔다. 유난히 작은 키 때문에 “몇 반에 엄청 키 작은 애 ~”로 시작하는 말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다지 기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나는 혼자 학교 도서관에 가곤 했다. 아마 그 시절 친구들은 나를 왕따까지는 아니어도 은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 학창 시절이 마냥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친구와 어울리진 않았어도, 교환일기도 쓰고 서로의 집에도 놀러 가는 친구 한 명쯤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조차도 처음에는 말을 시켜도 짧게 대답하고 먼저 놀자는 얘기도 잘 안 해서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혼자 다니던 나와 친구를 해준 그 아이가 지금도 참 고맙다.
이런 성격 탓에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플러팅을 해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니와,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었다. 연애를 시작해서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을 독점하고 있다는 심리는 차고 넘치는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게 만드는 독이 되기도 했다. 특히나 상대방이 내 마음을 다 알 거라는 착각은 사랑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데이트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은 뭔지, 어떤 영화가 보고 싶은지, 힘들 때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지,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또 즐거운지 사랑하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야 했다. 초코파이 광고에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고 정을 노래하지 않은가? 나는 상대방에게 그런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욕심은 때로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고문이 되기도 한다. 한 번은 남자친구가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나는 “선물은 괜찮아 ~맛있는 거나 사줘.”라고 했다. 그리고 결국 꽃과 책을 사들고 온 남자친구에게 “고마워~라고”라고 형식적인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때 내 말투나 표정이 남자친구가 보기엔 실망한 걸로 비쳤던 것 같다. 그는 시큰둥한 내 반응에 “ 말을 안 하면 네가 도대체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하면서 화를 냈다. 나는 나대로 ‘몇 년을 만났는데 귀걸이 한번 선물을 안 해 줘’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서운함 반 미안한 반으로 불편했다. 결국 축하해 주려고 준비했던 선물 때문에, 더 정확히 말하면 정확히 표현하지 않았던 마음 때문에 그날의 생일파티는 껄끄러움만 남기고 끝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몇 명의 인연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지독하게 싸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결혼하고 나의 착각은 점점 더 커져갔다는 것이다. 연애할 때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한다지만 결혼해서 까지 그런 걸 기대한다면 서로 지칠 일이다. 그런데도 백마 탄 왕자님도 아니고, 독심술사 아닌 남편 한데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불만이 있거나 내가 힘들 때마다 나는 입을 닫고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내봐 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런 나의 태도는 둘째 아이를 떠나보내고 더욱 심해졌다. 수술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육체적 심리적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그 고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잔뜩 웅크린 채 온몸으로 ‘DO NOT DISTURB’라고 말하고 있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내 고통을 남편만은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소리 내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밥도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는 나를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남편을 속으로 욕하고 원망했다. 아마 그 마음속에는 우리에게 찾아온 불행을 나 혼자서 고통스럽게 견뎌내고 있다는 분노도 한몫했을 것이다. 남편도 그런 내 안의 살기를 느꼈는지 곁에 다가와 위로를 건네기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거나, 내가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노력을 멈췄다.
서로에게 냉담해지는 것 그것은 어쩌면 그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의 반증이 아니었을까? 냉정과 열정사이의 여주인공 아오이에게서 나의 그런 마음이 보았다. 외로운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아오이는 쥰세이를 만나면서 그 외로움을 치유받는 듯했다. 하지만 아오이는 중절 수술을 하고 온 가장 아픈 순간에 쥰세이로부터 위로 대신 헤어짐을 통보받는다. 그 때문이었을까? 준세이와 헤어진 아오이는 새로 만난 젠틀하고 따듯한 애인에게도 어느 선 이상 마음을 주지 못한다. 그건 쥰세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아이를 아무 상의 없이 지우고 온 아오이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쥰세이는 아오이와 이별한 후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곁에 두고 그녀에게 잔인하게 대한다. 아마 준세이와 아오이는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계속해서 사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헤어진 후에도 10년 후 두오모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마음속에 간직한다. 그 약속은 이들에게 서로가 깊이 사랑했던 추억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고, 아직 남아있는 사랑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그 잊을 수 없는 사랑의 기억에 따라 정말로 10년 뒤 두오모에서 기적 같은 재회를 하게 된다.
이혼을 하고도 사랑했던 마음은 남는다.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이혼도장을 찍고 돌아서는 남편과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서 쥰세이가 이별을 통보했을 때 아무 말 없이 뒤돌아 선 아오이의 마음을 이해했다. 상처를 주고 싶지도 상처 받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침묵임을 키 작다고 놀림받던 어린 시절부터 저절로 알게 되었다. 더욱이 쉽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이해받을 수 없는 종류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도서관으로 또는 깜깜한 방으로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오지 않는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나도 사랑을 하기 전 도서관에서 홀로 틀여 박혀 었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도서관에서 끌어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옮겨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다시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왜 이혼을 했는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다시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마음을 나누는 방법은 책으로 배울 수 있는 종류의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준세이와의 10년 전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망설이는 아오이에게 보석가게 주인이 건넨 “ 자신이 있을 곳은 누군가의 가슴속이야”라는 솔루션은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혼을 하고 보니 이전보다 더 누군가의 가슴속에 머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한 누군가를 마음속에 들이기에는, 그 후 이별하게 될 때 감수해야 할 고통을 알기에 지레 겁먹게 된다. 아직은 마음속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타인의 입 퇴실을 막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준세이와 아오이의 재회는 해피앤딩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오이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행복하게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