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의미

박완서 -서있는 여자

by Sophie

아주 어릴 적 내 사진 속에는 아빠가 없다. 그때 아빠는 사우디에 건설현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셨다. 그래서 엄마와 남해 외할머니 댁에서 함께 살았다. 그때의 나는 남해를 주름잡던 꼬마 아가씨였다. 넓은 바다와 논두렁 밭두렁은 좋은 놀이터였고, 물장구치고 흙장난을 하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보면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엄마는 내가 비행기만 보면 “저거 타고 아빠한테 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고 했다. 그러다 다섯 살 쯤부터 아빠와 함께 살 수 있었다. 아빠는 중동 생활을 완전히 접고 돌아와 부산에 터를 잡았다. 비록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뜨거운 여름이면 계곡에 물놀이도 가고, 어린이날이면 놀이동산에도 갔다. 그렇게 소원했던 가족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때의 사진 속 엄마아빠는 나를 안고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만 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원수처럼 싸운 적도 많았다. 어렸던 나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화해하고 다시 나를 향해 웃어주었으면 했다. 그런 나 때문이었는지 싸움은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다행이었지만 어린 나는 많이 속상했었다. 엄마아빠를 원망하며 속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어도 절대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나는 수시로 남편을 비난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오면 말을 섞지 않았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날이 선 충고를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이 앞에서 남편과 크게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되었다. 그날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지난날 어린 자식 앞에서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물었었다. 내 물음에 엄마는 “내가 너랑 니 동생 땜에 여즉 참고 살았지 안 그랬음 진즉 이혼했어.”라고 반 농담처럼 불만을 토로하셨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그때 어떤 심정으로 사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두 분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아빠는 돈 버는 수완이 좋으시고 일에 대해서는 완벽주의자셨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유흥을 즐기셨고,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엄마는 돈을 아낄 줄 만 아셔서,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셨다. 그리고 오지랖이 넓어서 양가 부모님, 형제들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에 가족들 대소사까지도 다 신경 쓰는 분이셨다. 그러니 서로의 고충이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두 분은 사이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사신다. 그렇게 계속 싸울 거면 이혼하라고 하니 이번엔 어린 손녀 때문에 싸워도 이혼은 못하신단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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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의 맘살롱입니다. 제 글은 글 그림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이야기를 통해 싱글맘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에세이입니다. 함께 수다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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