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무라카미 하루키
[인생 한치 앞도 모르겠다 싶은 순간, 일단 달려볼까 싶었던 책]
하루키의 소설 특유의 분위기도 좋지만, 그의 자선적 이야기가 담긴 글들도 참 좋다. 담백하고 자기고찰적이면서 너무 딥하게 감정적이지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가 재즈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한때 재즈가 흘러나오는 카페 겸 바를 운영했다는 점도.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 뒤 작가가 되며 글을 쓰는 것의 행위에 대해 그가 고민하고, 고민한 흔적이 담긴 '직업으로서 소설가'도 꽤 유명한 그의 자서전적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이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의 인생을 달리기라는 축으로 놓고 풀어낸 글이었다. 읽는 내내 달리기를 비록 즐겨 하지 않는 독자이더라도 달리기로 전하는 그의 깊은 고민과 생각이 솔직해서 새겨두고 싶은 페이지가 많았다. 마라톤의 과정에서 그가 겪은 정신적, 육체적 변화를 담아낸 것을 읽으며 나도 한번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결승선을 넘어설 때의 이제 그만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몰려온다는 표현이, 역설적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 소설가가 되기를 결심하고 만년필을 일단 사왔다는 게. 어쩌면 요즘 시대엔 너무 막연하고 무식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가장 정확하고 확고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나의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보게끔 했다.
- 이제 그만 달려도 좋지 않겠냐는 남들의 말에도, 그저 계속 한다는 게 그저 본인의 성격이라는 게 참 마음에 들었다. 앞장에서는 혼자 웅크리고 파고드는 성격이 자신의 특성인지라 혼자서 몰두해야만 하는 일이 괴롭고 외롭지만은 않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소설가로서의 그의 자질이 보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공감가는 성격으로서는 이런 자기고찰적인 부분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는 굳이 왜 이럴까 싶은 때에 비슷한 부류처럼 느껴지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기도 했다.
- 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언제라고 항상 이길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니까.
-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할 지에 대한 똑똑한 판단.
- 달리기를 하며 발견하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들, 극한의 상황에 치닫았을 때를 스스로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자기확신들이. 이 사람 참 멋있다고 읽는동안 생각하게 했다.
- 달리기에, 사이클, 수영까지 나아가면서도 그 레이스선 앞에서 순간 이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이런 일을 해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를 생각했다는 하루키의 말이 특히나 와닿았다. 왜인지 이게 위로가 되었다.
-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잘되가던 장사를 접겠다는 마음을 먹은 순간이었다. 그 장사도 정말 미친듯이 일궈낸 것임이 느껴졌는데 또 하나를 얻기 위해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그리고 결국 그 얻어내고자 했던 것이 마음먹은 대로는 되지 않았던 것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 달리면서 보는 자연의 광경 속에서, 계절의 변화 속에서, 결국 나라는 존재는 거대한 모자이크의 미세한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말.
개인적으로 정말 고민이 많은 시기에 읽게 된 책이었다. 내 스스로의 본성이 참 답답한 순간들의 향연인 요즘이었다. 그냥 가만히 주어진대로 살면 될 것을 굳이 굳이 일을 벌리고 가시길을 만들어내는 편인지,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16살 쯤 자기 몸을 거울로 관찰하며 단점을 세어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스물여섯일곱까지 세다가 포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많은데 안까지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겠냐는 그의 말이, 참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진짜 한치 앞을 모르겠다 싶은 순간에 딱 읽으며 한번 달려볼까 싶었던 책이었다. 들어가라, 나의 인생책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