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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경희 Nov 02. 2021

수박과 브랜딩

에어톡 AirTok 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BI 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난여름 가장 재밌었던 업무는 단연 서비스 정체성을 표현하는 브랜딩 작업이었다. 예쁜 껍데기도 좋지만 묵직한 알맹이가 느껴지는, 꼭 어울리는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지는 익히 들어서 걱정이 되었다. 치트키인 서울 청년창업사관학교 단톡에 조언을 구했는데, 어느 대표님이 좋은 서비스가 있다며 소개해주셨다.


명함을 받았는데 회사 이름이 수박이었다. 그냥 수박도 아니고 그.수박, 더.워터멜론 이었다. 멜론도 아니고 워터멜론이라니. 회사 이름이 더 쩜 워터멜론이라니. 우리 회사 이름을 정할 때도 미적분학에 나오는 입실론-델타 (ε-δ) 에 꽂혔던 이과 감성의 나에게는 아주 신박한 접근이었다. 이 정도의 갬성 (감성보다 한 차원 높다!) 이라면 믿고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이웃분들에게 우리 팀의 일을 부탁드리는 건 항상 즐겁다.


정부 지원금으로 집행하는 한정된 예산이 있었는데, 몇 가지 품목이 조합된 합리적인 패키지들을 소개해주셨다. 회사 이름은 수박이고 서비스 이름은 아보카도. 카카오톡 채널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귀여운 아보카도 캐릭터의 얼굴로 방실방실 웃으며 대응을 해주신다. 딱히 그럴 일도 없었지만 아보카도니까 화를 낼 수도 없고 아보카도니까 미워할 수도 없다. 그렇게 평화롭고 따뜻한 존재감이 전해진다.


비대면 서비스인데도 샘플 결과물이 훌륭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설문이 섬세했다. 공모전 형식의 다른 플랫폼보다 본질과 철학에 대한 질문이 많은 듯했다. 너희는 왜 존재하니? 누구를 위해 존재하니? 라는 질문에 촘촘하게 대답하다 보니 자부심과 자신감이 차오르는 건 덤이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산업디자인학과 대학원에서 막 공부를 시작할 무렵, 전공 수업에서 < What is "Good" Design? > 이라는 과제를 받고 한참을 고심했다. 아마 적당한 대답으로 넘어갔을 텐데, 이후 어느 선배가 훌륭한 답을 던져 주셨다. 좋은 디자인이란 "필연성"이 있어야 한단다. 그 색을, 그 형태를, 그 재질을 선택하는 데에 다 이유가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쨌든 대학원은 연구자를 키우는 곳이었다. 나는 3년 차 서당개처럼 디자인을 말과 글로 배웠다. 디자인의 역사도 배우고, 논문도 읽고, 비평문도 써보면서 이전보다는 보는 눈이 생겼다. 물론 커피 맛을 잘 안다고 바리스타가 아닌 것처럼 여전히 내 두 손은 앞발이었다. 그래도 미대 나온 동기 언니의 작업과 나의 것을 견줄 때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구린지(!) 빠르게 깨달을 수는 있었다.


신뢰할 만한 전문가들을 모신 나는 기꺼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최대한 많이 부어드리려고 노력했다. 사람도 나무도 다 탄소예요. 공기는 눈에 안 보이지만, 데이터는 시공간을 넘나들어요. 평면은 2차원인데, 공간은 3차원이고, 데이터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4차원이에요. 빨강부터 초록까지는 온도나 공기질을 표현하는 그라데이션이 많으니 겹치지 않게 파랑이나 보라는 어떨까요. 공기는 가볍고 동적이에요. 우리는 똑똑하고 상냥한 서비스가 되고 싶어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며칠을 기다리니 결과물이 나왔다. 10명이나 되는 디자이너분들이 각양각색으로 우리 브랜드를 표현해주셨다. 다른 시안도 훌륭했지만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이 하나 나와서 우리 팀도 만장일치로 하나를 골랐다.


아보카도 팀의 미션은 "브랜드의 대중화"라고 한다. 가난 때문에 미대에 못 간 게 평생 아쉽고, 30년 넘는 세월을 건설 현장에서 일하신 아버지께 은퇴 선물로 작은 BI 패키지 하나를 결제해드렸다. 귀농 후 고향 친구들과 농장을 꾸리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계신다. 담당 매니저님이 고생하실까 걱정도 되었는데, 대중화라는 말에 용기를 내어 부탁드렸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외주일지라도, 아버지께는 디자인 클라이언트가 되어보는 일생일대의 경험이다. 수시로 캡처를 보내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귀여우시고 짠하고 기쁘다. 


아무튼 상표가 있긴 한데 동네방네 자랑할 정도는 아닌 분들이라면 고민하지 마시고 아보카도 팀을 만나보시길 권한다. 정체성을 거울처럼 비춰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보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도와주실 거다. 그 여정이 그저 힘들거나 외롭지는 않을 테니, 한 번쯤 당신만의 가치를 브랜드로 꽃 피워보시길.




당장이라도 부웅 떠오를 듯한 에어톡의 로고. 공간감과 움직임이 느껴진다. ⓒ AirTok
아보카도의 고객이 되면 상냥한 파머와 함께 가드너 (디자이너 / 네이미스트) 분들에게 작업을 의뢰할 수 있다. ⓒ abocado


프리미엄 공기관리 서비스, 에어톡 https://www.ecrox.io/

온라인 브랜딩 파트너, 아보카도 https://abocad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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