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걸 진짜 해봤다고?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 생각해도 기가 차는 일화들이 있다.
하루는 "맨발에 슬리퍼 금지" 라는 규정이 생겼다. 기숙사 학교에 외부 손님들이 오시는데 학생들의 자유로운 차림이 거슬린 모양이다. 아침이면 기숙사 입구에서 단속하시는 사감선생님과 실랑이가 있었다. 자습할 때나 밥 먹을 때 맨발로 슬리퍼를 신는 게 뭐가 문제냐고 입이 나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맨발로 복도를 유유히 지나는 모 선배를 만났다. 맨발. 그야말로 맨발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무슨 일인지 묻는 내게 "아, 내가 발에 땀이 많아서." 라며 싱글싱글 웃으며 지나갔다. 와, 저 사람은 진짜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우선 제약 조건에 대한 명확한 고찰. 맨발과 슬리퍼의 조합이 금지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욕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 나는 여름에 발에 땀이 차는 게 너무 불쾌하고 찝찝해. 그리하여 맨발이라는 쾌적한 상태를 지켜내면서도 슬리퍼라는 제약 조건을 제거해버린 아주 참신한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금지되지 않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발상도 신기했고 그걸 실천에 옮기는 용기도 존경스러웠다. 실험동에서 교실동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혁신적인 똘끼였다.
그리 오래지 않아 감명 깊은 또라이가 한 명 더 나타났다. 같은 고1 재학생 친구가 보통 중3 친구들이 지원하는 신입생 선발 전형에 또 한 번 원서를 냈다가 교무실에 불려 갔다. 사실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다. 성적증명서도 잘 냈고, 자기소개서 쓰고, 추천서도 받았고. 그런데 그게 진짜 접수가 되어버린 거다. 선생님 한 분이 동명이인인지 확인을 하시는 바람에 서류합격 발표 전에 검거되었다. 취조를 받고 교무실 앞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는데 구경은 못 했다.
이유는 그냥 궁금해서. 이게 접수가 되나?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지필고사도 붙으면 면접도 한 번 더 보나? 이런 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런 상상은 얼마나 재미가 있었을까. 어떻게 본인이 다니는 학교에 또 원서를 낼 생각을 했을까? 호기심을 가진 것도 신기하고 그걸 검증하려고 실천에 옮긴 것도 대단했다.
당시에는 그런 엉뚱한 시도들이 썩 환영받지는 못 했다. 안전상의 이유로 맨발 행보도 저지당하고, 입학 지원도 결국 철회했다. 철없는 장난과 참신한 발상. 그 사이 아슬아슬한 어딘가. 편안하고 안전한 지점을 딱 반 발짝 정도 벗어난,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듯한 불편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 새로운 시도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나는 믿는다.
맨발로 다니던 그 학생이 재료공학, 열역학, 생체 발열과 보행에 대해서 공부해서 극강의 통기성을 가지면서도 앞코가 막혀있는 신발을 만들었으면 어떨까? 실은 맨발이지만 신발을 신은 것처럼 광학적인 착시를 주는 쪼리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입학 시험을 한 번 더 치려던 그 친구를 포함해서 재학생 일부를 블라인드로 입학 전형에 참여시키는 건 어떨까? 전년도 입시 데이터와 비교한 통계로 매년 지원자들의 특성과 동향을 더 잘 파악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쉽게도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나도 점점 안정을 추구하는 탓인지, 괴짜들을 만날 일이 점점 줄어가는 것 같다. Think out of a box. 나는 어떤 상자 안에 갇혀서 갇힌 줄도 모르고 살고 있을까. See the unseen. 한 걸음 나아가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또 얼마나 신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