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던 그 ㄴ이 정답을 찾는 방식
시험 마치고 엉엉 울더니 전교 1등을 하는 아주 재수 없는 녀석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바로 나였다.
마지막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랐다가, 마지막 순간에 바꿨는데 결국 틀리고 말았다. 좀 더 꼼꼼하게 공부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자책도 있고, 노력을 쏟는 동안 점점 간절해져 버려서 손 끝에서 놓쳤을 때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그토록 점수에 집착했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니 관점의 차이였다. 애당초 득점이 아니라 감점을 줄여야 이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8 학군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는 30대 중반에도 수능시험에서 몇 개를 틀렸는지 기억한다. 점수를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깎이지 않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완벽한 정답의 상태를 규정해두고 오차는 곧 흠결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훨씬 많다. 대부분의 중요한 문제들도 정답이 없다. 왜 사는가? 결혼을 해야 하는가? 한다면 누구랑?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급자의 역할을 하려다 보니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야 한다. 왜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해야 하는가? 왜 이 훌륭한 분이 우리 회사를 다녀야 하는가? 왜? 에서 시작한 질문은 무엇을? 어떻게?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게 정말 그야말로 노답 대잔치다. 내 답은 있어도 정답이 없다. 모든 개인과 법인이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다르게 두기 때문일 것이다.
정성적인 문제를 잘 푸는 사업가분들은 정량적인 지표도 잘 만드신다. 누가 고객인가, 어떤 시장인가. 왜 성장할 것인가.
가끔 머리를 비우고 싶을 때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푼다. 수도쿠도 좋고, 네모로직도 좋다. 무슨 동작을 몇 킬로로 몇 회 반복할지 정해주시는 PT도 좋다. 잠시 눈앞의 얕은 수치에 집착하기도 한다. 엔지니어링에서 시스템을 정의하듯이, 경계를 설정하고 입력과 출력을 잡는다. 출력이 원하는 상태가 되도록 피드백을 먹여서 입력을 수정한다.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의 모델링과 제어를 돌린다.
98점도 99점도 찝찝하다. 대체 어디서 깎인 거야. 뭐가 잘 못 된 거야. 한정된 지표일지언정 작게 정의된 그 세계에서라도 완벽한 점수를 만들면 쾌감이 온다. 적어도 이 경계 안에서는 내가 승리했다는 정복욕이 채워진다. 길게 썼는데 시베리아 찬 바람에도 우리 사무실은 핸드폰 충전기 5개 전력으로 100점이 나온다는 자랑이다. 우리 고객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습도가 40프로가 넘어서 바이러스 방역이 된다는 자랑이다.
슬픔과 기쁨과 감사가 버무려진 한 주가 지났다. 나는 아직 무사하다. 아직 숨 쉬고 있고, 높아지는 이산화탄소 농도를 살피며, 더 커질 자연의 재난을 염려하며, 같이 숨쉬기 좋은 방법을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