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노트 #소피
프로젝트를 1일부터 시작한 덕에
오늘이 25일째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100명을 얼굴을 만나는 100일의 작업.
아마 이 숫자가 편안한 이유는 우리가 10진법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열개의 손가락으로 살아간다.
손가락이 여덟 개였다면 64일 동안 64명을 그리고
열두 개였다면 144일 동안 144명을 그렸을 것이다.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분하다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이?라고 물으면
양손을 쭉 뻗어 100개라고 대답하곤 한다. 100이라는 수는 그토록 순수하게 ‘크다’.
모자람 없이 가득하며, 100 명을 다 채우고 나면
분명 특별한 의미를 찾을 것만 같다. 아주 믿음직스러운 숫자다.
97명이나 83명을 그리자고 했으면 굳이? 왜?라고 묻는 이가 있었을 텐데
“우리는 백일동안 백 명을 기록해요”라고 하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9월 10일. 삼성동에서 릭과 대화를 나눈 뒤
먼저 일의 흐름을 파악했다.
주인공을 추리고, 일정을 잡고, 사전설문을 보내고, 실제로 만나고, 영상을 찍고, 파일을 옮기고,
영상을 편집하고, 그림을 그리고, 썸네일을 오리고, 제목을 짓는 일.
누가 어느 부분을 하고 있는지, 품이 많이 들거나 병목이 될 위험은 어디에 있는지.
답답하거나 아쉬운 것은 무엇인지. 보이는 대로 물었다.
다행히도 해이든과 릭은 나의 빠르고 거침없는 제안을 받아주셨다.
뭉실뭉실한 현안을 잘게 쪼개고 다시 조립한다.
목표가 선명해서 빈 구멍이 잘 보인다. 일단 급한 건 자막.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계가 서툴게 받아써준 글을 살핀다.
서울 사람들의 억양, 비슷한 어휘. 자연스럽게 섞인 외래어들.
시대상이 반영되어 새로 생긴 신조어들.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 글자로 쏟아진다.
프리랜서, 알고리즘, 솔로프리너, 소셜미디어, 마케팅, 브랜딩, 네트워킹.
영어 없이 일에 대한 대화가 가능할까 싶다.
근데, 사실, 이제, 좀, 약간.
너와 내가 나도 모르게 쓰는 말이 닮았다.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정체를.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행위를.
머릿속을 채운 단어는 무엇입니까. 생각을.
10년 뒤 당신이 지금의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미래를.
지금, 여기.
2025년 서울이라는 시공간의 경계를 쳐두고 흘러가는 순간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