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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6. 2017

자취방 인터넷 개통 투쟁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군대 복무를 하고 복학을 했더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첫 수업에서 교수는 도면을 컴퓨터로 그려오라고 숙제를 내줬다. 군대 복무 전에는 도면을 손으로 다 그렸었는데 컴퓨터로 그리라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거니와 더 큰 문제는 나는 컴퓨터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 1학년 때도 모든 레포트는 학교 전산실에서 작성하고 출력은 학교 인근 출력소에서 했던 경험밖에 없던 나는 PC방이 보급화되고 1인 1 컴퓨터를 가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나는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방법도 몰랐고 여전히 연필로 도면을 그리고 있었고 필요할 때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도면을 컴퓨터로 그려 과제를 제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레포트는 역시나 학교 전산실이나 PC방을 이용했다. 다행히 대학원 선배와의 친분 때문에 건축과 전산실을 밤에 몰래 이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난 컴퓨터를 갖고 싶었다. '컴알못'이던 내가 자취방에 컴퓨터를 가져다 놓기 위해서는 일단 컴퓨터를 살 돈을 구하는 일이었다. 막노동을 통해 몇 달 모아놓은 여윳자금은 대약 60만원가량이 되었고 나는 이걸로 컴퓨터를 사기 위해 벼룩시장을 뒤적거렸다. 다행히 내가 가진 돈에 맞는 중고 매물이 있었고 컴퓨터를 잘 아는 대학원 선배와 동행하여 그 중고매물을 검사한 다음, 약간 네고(nego)를 해서 56만원에 구입했다. 


자취방에 컴퓨터를 옮겨다 놓으니 그렇게 감개무량하더라.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들을 대출해왔다. 그런데 세상은 책상 위에 컴퓨터 한대만 가져다 놓는다고 충분하지 않은 IT세상이 되어 있었다. 인터넷 연결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ADSL이 대세였다. 유인물에 적힌 ADSL 개통 연락처로 개통 문의를 해보았다.


몇 군데 회사에 연락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ㅇㅎ마을에는 인터넷을 개통해 줄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케이블을 연결할 기본 인프라가 이곳에는 설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ㅇㅎ마을에서 인터넷을 쓰고 싶다면 전화 단자에서 연결해서 쓰는 방식으로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런 방식으로 인터넷을 보급했던 인터넷 보급업체는 단 한 군데만이 있었다. 만일 자신네들이 ADSL을 설치하려면 전신주를 새로 세우고 케이블을 추가 배선해야 하고 그러면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와 ㅇㅎ마을에 인터넷 회선 연결에서 얻는 수익으로는 손실이 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느려 터진 인터넷을 쓸 수 없었다. 그때부터 여러 ADSL사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Mail to. 000 사

본인은 ㅇㅎ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귀 사의 ADSL을 연결하고자 하였으나 본인이 거주하는 곳에는 인프라가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다는 이유로 인해 거절되었고....(블라블라).....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터넷 보급률 1위라는 기염을 토하는 국가이며 울릉도에도 설치되어 있다는 인터넷이 유독 이곳에서만 케이블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아니하여......(재잘재잘)..... ADSL 시대를 여는 귀 사의 투자는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써의 위상을 더욱 곤고히 할 것이니 부디 회선이 들어올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라는 취지의 글들을 보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한 회사에서 연락을 해왔다. 해주겠다고.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는 ㅇㅎ마을 최초의 ADSL 회선을 가진 남자가 되었다. 이 이후로 많은 자취생들이 ADSL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ADSL세상을 연 것이 바로 나였음을 아는 사람은 내 동생밖에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인간다운 삶이 시작되기 시작했다.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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