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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4. 2017

언제나 함께했던 '배고픔'

미련하게 굶주렸던 나날들

짹 짹 짹

6시 20분. 언제나 이 시간이다. 

늘 핸드폰 알람은 7시로 맞추어 놓고 자건만 일어나는 시간은 6시 20분. 참새들과 종족이 뭔지 모르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의 목소리가 이리도 깨끗한 것을 보니 날씨가 참 좋은 모양이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었으면 하지만 25년을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보거나 내 전공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절대 난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다. 분명 나는 올빼미형 인간임에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늘 계획한 것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게 되는 이유는 배고픔이다. 


'배고프다'


어젯밤도 굶주림에 떨다가 그 배고픔을 잊고자 일찍 잠들었지만 역시나 배고픔에 의해 눈이 떠지게 되는 이 놀라운 인체의 신비를 저주하면서 베개에서 머리를 떼고 벽에 기대어 앉는다. 자취를 시작한 지 이제 갓 한 달.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 혼자 산다는 가정하에 스스로 숙식을 해결하는 비용보다 학교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산 것도 단 보름뿐이고 이놈의 자취생활이라는 것이 늘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도 같다. 처음에는 한 끼당 1500 원하는 학교 식당을 이용해 주었지만(그것도 단 두 끼만 먹고 지냈다.) 2주 만에 수중에 돈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루에 한 끼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빌어먹을 식당밥이 정부미로 밥을 했는지 아무리 많이 리필하여 먹어도 금세 배가 꺼지는 것은 자취인의 신체구조가 식량을 탕진하도록 진화된 것인가라고 자문해 보곤 한다. 



당시에 나는 집에서 원조를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터라 학교가 쉬는 날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 (4년 전에도 그러했듯) 인근 인력사무소로 출근하여 인근 건설현장을 누비고 일당 6만원을 받아 생활비와 방값, 체면 유지비로 사용하였다. 방학 때는 거의 한 달에 80만원 가까이 벌었었고 개강 후에는 18만원정도만을 벌어 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 달에 80만원을 벌든 18만원을 벌든 굶주림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문화생활도 하곤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영화를 너무 좋아했던 터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기꺼이 헌혈을 했다. 헌혈 한번 하면 영화표가 하나 공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 먹어보지 못하는 간식도 주고 자리를 잘 잡으면 인터넷도 할 수 있는 침대도 얻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의 학교생활은 단순했다. 집 -> 학교 -> 식당 -> 학교 -> 도서관 -> 집의 순환이었다. 나보다 4살 어린 학우들과 같은 수업을 받지만 절대 친해지지 않았다. 조금만 친해지려 하면 그들은 여지없이 나에게 순진무구한 얼굴과 광기 어린 눈빛을 가지고 달려들어와 밥을 사기를 명령한다. 당시 나의 학교생활은 아웃사이더였으며 그 가장 큰 이유는 배고픔이었다. 일단 나부터 먹고살고 보자라는 강한 생존 욕구가 만들어낸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저녁을 거의 굶다시피 하다 보니 밤 10시가 되면 해일처럼 밀려드는 배고픔으로 인해 그 조그마한 방에서 배를 움켜쥐고 어서 잠이 들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정말 배가 고프면 잠도 오지 않는다. 

그 고통은 노홍철을 단번에 우울증 환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그럴 적에는 비루한 몸뚱이를 일으켜 세워 동네 슈퍼에서 라면 한 봉지를 눈물을 머금으며 산다.(기억에 스낵면이 가장 저렴해서 그걸 주로 사 먹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스낵면 하나에 350원인가 했던 거 같다. 요즘은 마트에서 더 싸게 파는 것 같다. 신비로운 인플레이션)

그리고 라면을 끓일 때 물을 2봉지 분을 채우고 끓인다. 

국물로 배를 채우기 위해서다.(맛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

나중에는 집에서 고춧가루를 가져오게 된다. 

더 맛있는 국물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나서 피는 담배 맛은 아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혹자는 담배 사 필 돈은 있으면서(담배값이 식사비보다 더 비쌌으니깐) 밥은 굶었냐 라고 묻는다면 그냥 웃지요. 굶는 한이 있어도 담배는 굶지 못한다. 그냥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어가자.


난 가끔 한 보루에 2000원 하는 '솔'도 수소문해서 구했던 사람이다. 담배 살 돈도 떨어지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대체재가 있다는 것을 감사해했다. 솔의 그 역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진 한도 내에서 담배를 피고자하는 욕구를 잠재우지 못하였으니 이쯤이면 대충 설명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이 배고픔은 내가 자취를 끝내는 동안 늘 나의 동지처럼 따라다녔다. 

그 당시는 눈빛이 이글거리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와 같았다.

그리고 그 배고픔은 내 둘째 동생이 자취에 합류하면서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눈내린 학교 뒷편길. 이 길을 쭉 따라가면 ㅇㅎ마을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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