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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3. 2017

Reloaded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다시 시작한 자취생활 그리고 개미 출몰 사건

1998년 21살 미숙하기 그지없던 자취생활이 끝나고 단체생활인 군대생활로 넘어갔다. 26개월이란 시간 동안 이전 자취방보다는 100배는 좋은 군대 내무반에서 생활하니 좋기는 개뿔 차라리 자취방에서 배를 곯는 게 100만 배는 나을 것이다. 나에게 군대는 그러했다.


군대 제대 후 바로 복학도 하지 않고 잠시 또 허튼짓을 하고 다니다 25살의 나이로 복학을 했다. 

제대 후 허튼짓을 하고 다닌 덕분에 복학할 당시 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이 족히 걸리는 거리를 통학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내가 집에서 학교를 다니길 원하셨다.


그리고 나름대로 한 학기를 모범수처럼 무사히 마치고 난 뒤, 나는 여러 가지 공부도 하고 싶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시골에서 통학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싶었고 부모님의 동의하에 또다시 학교 뒤편의 'ㅇㅎ마을'에 살림을 풀어놓았다. 4년 동안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1살 당시 자취를 할 때, 25살의 내 모습은 팬트하우스에서 주방에 돈가스를 준비해놓고 머그잔에 담긴 웰치스를 음미하면서 건축학개론을 펼쳐 놓고 읽는 것을 상상했다. 4년 동안에 인생역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ㅇㅎ마을'에서 자취를 해야 했다.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나마 발전한 것이라면 4년 전에는 ㅇㅎ마을 맨 끝집이었고 이때는 마을 입구 맨 앞집이라는 것이다.


이사를 하던 그 날은 2002년 월드컵,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조예선 경기였지만 사람들은 미친 듯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삿짐을 바리바리 들었고 그들은 붉은 티에 태극기를 바리바리 들었다. 

내 자취방.

보증금 없이 월 10만원이고 2평 남짓한 그곳. 생각보다 방을 잘 구한 것 같다. 북향 방이긴 했지만 방문을 열면 넓은 정원도 보였고(여기 집주인이 식물을 키우는 것을 넘어서서 아마존을 만들고 싶지 않았나 싶다.) 세면장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으며 남쪽에 창도 크게 나서 적당한 빛도 들어오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왔다. 내 방엔 의자도 없는 내 나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책상 하나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는 방 한편에 이불을 깔아 두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대학원 선배하고 동갑내기 친구랑 월드컵 응원을 가기로 해서 저녁 즈음에 붉다 못해 새빨간 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집과 학교까지의 거리는 거의 20분 정도. 우리 시골에서 학교까지 1시간 거리인데 지리적 거리로는 거의 100배가 차이 나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단체응원을 하는 곳으로 향했다.

한국이 누구랑 경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무튼 대단했다. 해가 지고 경기가 끝났을 무렵 거리는 붉은 물결이 되었다.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경적이 울려댔고 모두들 소리를 지르며 2열 종대로 태극기를 흔들며 가고 있었다. 악교 정문 앞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고 그들의 함성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우리 3명은 맥주를 마시기 위해 인근 호프집을 찾았다. 


웃고 즐기고 술 마시니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바깥에 있어봐서 그런지 나도 반쯤은 흥분상태였다. 이윽고 내일 할 일을 위해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나의 첫 자취방에서의 취침을 위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ㅇㅎ마을은 참 좋은 동네이다. 시골 깡촌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만 나가면 문화시설이 즐비해 있고 유흥시설이 불을 밝히고 있다. 참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이다.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내 방문을 열었다. 방에는 찬 기운과 먼지 냄새가 섞여 상쾌하다. 방에 불을 켜고 옷을 갈아입고 세면도구를 챙겨 다시 방문을 닫고 세면장으로 향했다. 별도로 구획된 나만의 세면장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물론 밝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꾸며나가리라 다짐했다. 10분간 씻고 세면장을 나와 하늘을 보았다. 이곳은 청정지역이라 그런지 별이 많이 떠 있다. 내 방에서 우유색 빛이 은은히 비치고 있었다. 


방문을 열었다.

안경을 벗고는 있었지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방바닥 색깔이 좀 이상했다.

내 방바닥은 분명 합성 비닐장판이었고 색깔은 내 맘에 들지는 않지만 분명히 아이보리 색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시커먼 색이다.


안경을 썼다.

뭐여 이거..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방 색깔을 새카맣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수만 마리들로 추정되어 보이는 개미들이었던 것이다. 개미.. 개미라니!!

이런 개미들이 수만마리가 나타나 내 방바닥을 점령했다.


2평(6.6㎡)을 가득 메운 개미들.. 방바닥 어디 하나 손바닥만 한 여유도 주지 않고 개미들은 방을 점령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개미는 처음 봤다. 방에 들어올 때도 없었던 수만 마리의 개미들이 씻고 나오는 동안 이렇게 많이 기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많은 개미들은 왜 내 방에 있는 것인가. 논리적 추론이 불가능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담배를 물고 관자놀이를 눌렀다.

'술이 과했나?'

다시 문을 열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불과 10분 만에 어디서 기어 들어온 것이여.....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 만한 실제상황이었다.(실화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마침 가져온 에프킬라를 들고 화생방을 시작했다. 에프킬라를 반통을 다 쓰고도 그들은 죽지를 않는다.

지구가 멸망하면 니들이 왕이다. 이 자식들아..


빗자루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A4용지를 반으로 접어 개미를 밖으로 퍼 나르기 시작했다. 30분이 흘렀을까... 모든 개미들을 정원으로 보내주었다. 아... 정원.... 저기에서 개미새끼들이 사는구나... 그렇게 수만 마리에 달하는 개미들을 학살하고 나니 더 이상은 개미들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 3시 반 그렇게 난 자취방에서의 첫날밤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난 주인아주머니께 지난 새벽에 일어난 개미들의 만행을 고자질했다. 이건 거의 X-File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저주가 걸린 게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러나 우리의 주인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답하셨다.


"우리 집에도 개미 많아~"


다시 담배를 물었다.

다음날도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에 들어왔다. 

역시나 그들이 있었다. 또다시 방바닥을 가득 채운 개미들이 방주인인 나를 보며 환호를 하고 있었다. 다시 30분을 씨름해야만 했다. 에프킬라 나머지 반통을 다 썼다.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도 내 방을 지켜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다음날 철물점에 가서 빗자루를 샀고 테이프를 샀다. 그리고 개미 약을 구입했다. 방안에 장판과 벽이 만나는 곳을 모조리 테이프로 막았다. 중간중간 벽지가 구멍 난 곳도 다 막았다. 개미 약을 동봉해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장판 아래부터 테이프를 뚫고 지나가려는 개미들의 사체들이 내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다.


"씨발... 나.. 무서워"


이렇게 나의 2002년 자취생활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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