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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7. 2017

내 생에 최악의 일용직 알바 #1편

BEST 3. 벽돌 나르기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지~

남들 다하는 외식 한번 해본 적 없었고~ 

GOD의 ‘어머님께’라는 곡이 꼭 나를 얘기하는 것만 같았던 그 시절 지독히도 가난한 탓에 어려서부터 많은 일을 해야 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신문배달을 시작으로 대학 때까지 수도 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했던 그 시절~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했다. 특히 군대 제대하고 나서 복학한 뒤 자취 생활할 때도 노가다만한게 없더라. 그래서 학원 강의라는 고수입 알바를 하기 전까지 학교 수업이 없는 토, 일요일이나 쉬는 날에는 새벽바람을 가르며 인력사무소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하루 일당이 6~7만원이니 웬만한 알바보다 훨씬 낫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인력사무소에서 했던 많은 일들 중 대부분이 건설현장에서 자재 치우는 것이나 청소, 곰빵 이런 것인데 그마나 건설현장 일은 낫다. 어떤 일들은 정말 다시는 하기 싫은 일들이 있다. 자취생활을 하면서 내게 소중한 생활비를 벌어다 준 고마운 일들이지만 내 생애 최악이었던 일용직 알바 Best 3을 소개해본다.(인력사무실에서 파견 나간 일에 한정함. 앞으로 3편에 나누어 쓰겠음) 


▣ 벽돌 나르기

인력사무소에서 일을 나갈 때는 나 혼자 나가는 일이 두렵다. 전체적인 일 양이 많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나 혼자해야 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날 인력사무소에서 발탁(?)되어 차를 타고 1시간을 넘게 이동한 한적한 곳. 너른 들판에 조적조 집을 짓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이 집터가 작아 보였다. 이미 1층 슬라브는 조성되어 있었고 방수턱까지 설치되어 있었으니 벽체를 벽돌로 쌓으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나의 일은 벽돌을 나르는 일이다. 벽돌 야적장이랑 현장이랑 30m 정도 떨어져 있고 약간 경사져 있었다. 평소 나는 나의 강인한 체력을 믿고 있었고 오늘 시공할 물량이 많지 않아 보여 쉽겠다고 착각하였다.


벽돌 나르는 사람은 나 혼자. 벽돌 쌓는 사람 기공, 조공 합쳐서 7명. 끊임없이 벽돌을 그들에게 조달해야 한다. 말 그대로 SCV가 된 듯했다. 한 2시간 지나니 벌써 체력이 고갈 나기 시작했다. 벽돌을 손수레에 50여 장을 담고 달려야 한다. 그래야 물량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경사진 곳을 올라가기 위한 추진력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내 체력은 두 시간을 못 버텼다. 아직 오전 9시일 뿐인데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너무 힘들었다. 아마 여기가 시내권이었다면 돈이고 나발이고 가버렸을 텐데 차도 없고 어딘지도 모르고… 이 분들이 내가 있었던 곳으로 태워다 줄 때만이 귀가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내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오야지가 성질을 내기 시작한다.

“뭐여~ 시방 뭐 했다고 골골거리는겨? 허리허고 배에따가 힘 꽉 주고 움직이랑께?”


자존심이 상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자존심이 상한 주인공이 괴력을 발휘하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수레를 밀고 있는 자가 나인지 내가 수레인지 라는 혼돈의 의식 속에서 1초 1초를 버텨가고 있었다. 근데 이 사람들 하루 만에 벽돌을 다 올리더라. 내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하루에 벽돌을 쌓는 단수가 1.5m 이하인데 이 양반들 단 하루에 1층을 완성해버리다니… 학교에서 배운 거 현장에서 안 쓰더라…. (1.5m 이하로 시공할 경우 그날 시공량이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했음)


<대략 이런 분위기?>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거의 반 시체가 되어 벽돌을 나르는 건지 벽돌이 나를 나르는 것인지 경계가 애매한 상태가 되어 갈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미 오후이고 비가 와서 작업을 못하면 하루 일당은 다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집에 일찍 간다라는 생각이 날 즐겁게 했다. 작업자들은 한 30분 정도 쉬더니 역시나 악마같은 오야지가 말한다.

“야~ 그냥 허자~”


그렇게 난 비를 맞고 끝날 때까지 벽돌을 날랐다. 그 날 저녁 이대로라면 자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일당에서 돈을 꺼내 파스를 샀다. 자취방에 도착한다음 파스를 어깨죽지에 붙이려고 했으나 팔이 올라가지 않는 관계로 어깨에 파스를 끝내 못 붙이고 그냥 잤다. 파스는 그냥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3일을 앓았다.


난 앞으로 절대 벽돌집에서 살지 않을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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