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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8. 2017

내 생에 최악의 일용직 알바 #2편

BEST 2. 양파 농장

지난 글에서 내 일생 중 가장 힘들었던 일용직 알바 하나를 소개했었다.

[지난 글]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일용직 알바 #1편. <BEST 3. 벽돌 나르기>


오늘은 #2편. 농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말해보고자 한다. 농장은 그 단어처럼 마냥 낭만적이거나 컨츄리로드를 연상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공포스러웠던 그날의 기억을 소환해본다.


▣ 양파 농장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지만 농사를 짓고 살진 않았다. 그래도 옆집, 뒷집 많은 분들이 농업에 종사를 하고 있었기에 농사일을 잘 안다고 착각했던 거 같다. 인력사무소에서 농장에서 양파 수확물 창고에 쌓는 일 한다고 나를 포함 3명을 차에 싣고 달려갔다. 처음에는 '우왕~ 오늘 일 쉽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너무 낭만주의 자였다랄까. 땀 흘려 수확한 농작물을 불끈 둘러없고 허허허 웃으며 수건으로 땀을 닦는 나를 상상했고 아주 조그마한 창고에 양파를 쌓는 모습에 흐뭇해하는 우리 알바단과 소탈해 보이는 -새마을 모자를 쓴- 전형적인 이장님 스타일의 주인아저씨를 상상했다. 그리고 새참 같은 것도 수육으로 거하게 먹는 상상을 하던 차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하는 장소에 도착하니 일단 창고가 내가 생각한 창고가 아니다. 저 정도 규모라면 경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안성 근처에서 보이는 물류창고의 느낌이랄까. 어랏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이내 주인장이 나와서 대뜸 하는 말,


“오늘 다마네기 저기다 다 채우면 되는거여잉~”


그 말을 하고 있는 주인장 어르신 어깨 뒤에 마트만한 창고가 보였고 그 창고 뒤로는 - 끝이 보이지 않는 - 양파망에 담긴 양파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는 외발 수레와 반코팅장갑.



양파망 하나는 가볍다. 그런데 가벼운만큼 움직임이 많다. 양파가 담긴 양파망을 잡아서 창고 위로 보내는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작업이 초당 1회씩 실시된다. 가끔 일을 바꿔 넘실거리는 양파를 외발 수레에 담아 창고로 옮기는 것도 한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온 몸은 땀으로 도배를 했고 헉헉거리는 숨소리만이 유일한 대화였다. 저 멀리 보이는 우리 농장 주인장님은 두 손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시면서 소리를 지른다.


“빨리빨리~ 뭐혀~ 해 넘어가~”


오전이 지났을 뿐인데 내 팔은 흐느적거렸다.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양파망을 이마트만한 창고에 던지고 쌓고 하는 것을 반복하니 팔다리에 힘이 금방 빠져버렸다. 밥을 먹으려는데 수저가 손에는 붙어있으나 내 입으로 올라오진 않았다. 내 몸을 흔들었더니 어깨에 붙어있는 팔 두 개가 휘리릭~ 휘리릭~ 흔들거린다. 몸뚱이에 붙어있기만 한 흐느적거리는 팔을 보고 있자니 ‘아.. 내가 병신이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일의 강도는 더욱 늘어났다. 농장 주인장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물론 그분도 같이 우리랑 일을 했지만 흡사 그분은 터미네이터와 같았다. 또, 마치 채찍을 들고 노예들이 돌을 끌고 갈 수 있도록 재촉하는 이집트 피라미드 축조 관리자 같았다. 

그 와중에 힘들었던 것은 창고에 먼지가 가득했던 것이다. 양파 먼지로 인해 숨조차 쉬기가 힘든 곳이었다. 우리가 마스크를 좀 달라고 했더니 그 피라미드 건설 관리자는 이렇게 말했다.


“마셔~ 양파 먼지는 보약이여 보약~ 남들은 없어서 못 마셔~”


‘전 안 먹어도 괜찮아요~ ㅜ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열심히 양파 먼지를 마셔줬을 뿐이다. 팔은 이미 내 팔이 아니었다. 양파를 옮기는 팔에도 감각이 없고 수레를 움직이는 팔도 감각이 없다. 먼지로 인해 눈과 목은 아프고 땀은 맵고 해는 뉘엿뉘엿 져가는데 피라미드 건설 관리는 속도를 높였다. 그분은 철인 3종 나가시면 분명 상위권에 랭킹 될 것이다. 비명 한번 못 지르고 마트만한 창고에 양파를 채워나갔다. 정신은 이미 나갔고 팔은 몸통에 물리적으로 붙어있을 뿐이지 팔이라는 감각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일을 해 나갔다.


이 날 이후 인력사무소를 3일간 못 나갔다. 몸살이 나서.. 농부님들 존경합니다. 이 일을 한 뒤 한동안 나는 양파를 멀리했다. 요즘도 가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다가 내 차 옆으로 양파를 가득 실은 차가 지나가면 흠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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