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스트 Jan 19. 2017

내 생에 최악의 일용직 알바 #3편

BEST 1.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지난 글에서 내 일생 중 가장 힘들었던 일용직 알바 두 개를 소개했었다.

[지난 글]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일용직 알바 #1편. <BEST 3. 벽돌 나르기>

[지난 글]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일용직 알바 #2편. <BEST 2. 양파 농장>


오늘은 #3편.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일용직 알바 경험을 말해보고자 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은 일의 강도를 떠나서 음식물의 부패로 인한 유독가스에 노출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언제나 힘들고 험한 일은 일당쟁이들의 몫이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내 생애 가장 빡세고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이 일을 하게 되었던 날도 여느 날과 다를 게 없는 평화로운 날이었다. 다만, 새벽에 비가 조금 내려 부스스한 분위기에 인력사무소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좀 길게 느껴졌을 뿐. 오늘 일이 없으려나 하던 찰나에 갑자기 10명의 인부가 필요하다는 전화가 인력사무소로 걸려왔고 아침 7시가 넘을 때까지 일을 나가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던 많은 이들이 고무되어 승합차를 타고 떠났다. 그곳은 인력사무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공장지대였다. 나는 평소 그 옆길을 다니다가 아 저기가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놓는 데구나 라고 생각했던 곳이었고 내가 저기를 가게 될지는 이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음식쓰레기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승합차가 도착하여 공장 관계자가 우리를 데리러 나오자마자 우리 10명 중 4명은 ‘집에 갈래요’ 이런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

“나 여기서 일해봤어. 뒤져~ 뒤져. 못해~”


 나는 이게 뭔 일 이래 하면서 의아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러는 사이 4명은 다시 돌아갔다. 공장 관계자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하아~ 자. 또 집에 가실 분 있나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왜 10명씩이나 불렀는지 알겠다. 이렇게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이 사람들도 아는 것이었다. 집에 간다는 사람이 없자 우리를 이끌고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여 처리하는 곳이었다. 일부는 건조하거나 일부는 부패시켜서 2차 부산물을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더니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갑자기 기계가 고장 나 그걸 고치기 위해 부패시키고 있던 음식물 쓰레기를 퍼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장비로 퍼냈으나 가장 깊숙한 곳, 가장 좁고 어두운 아래에 담겨있는 음식폐기물을 퍼내야 한다고 했다. 깊이는 대략 1.5M 정도. 이 얘기를 듣고 남아있는 6명 중 2명이 집에 갔다. 그러자 공장 관계자는 일당을 10만원으로 올렸다. 그래서 10만원의 노예가 된 나를 포함한 4명이 작업을 착수했다. 작업현장을 보니 사람 두 명 정도 들어갈 구멍이 바닥에 뚫려 있고 그 안에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했다. 이미 악취로 인해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마스크를 받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공장 관계자 양반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가져왔다.

‘아… 저기 들어가라고…’ 


그때서야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때 돌아갔어야 했다. 2명이 들어가서 바케스에 부패가 된 음식물 더미들을 담아 위로 올리는 작업이다. 먼저 키가 큰 아저씨들이 들어가서 작업을 했다. 오우 쉣~ 그 비주얼이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거기서 나오는 유독가스로 인해 20분 이상 작업을 하지 않았다. 20분 작업에 20분 휴식이다. 중간에 교대를 하는데 내가 들어갔더니 음식물 쓰레기가 내 가슴까지 올라온다. 입으로 숨을 쉬어도 냄새로 인해 그리고 가스로 인해 머리가 띵하다. 너무 높게 차 있으니 양동이를 위로 올리는 게 좀 어정쩡해 가끔 머리 위로 흘러내린다. 윽~


오전 작업 후 새참이나 밥을 먹는 시간에 잘 먹지 못하였다. 온몸에서 진동하는 음식물 삭힌 냄새들로 인해 다들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또 땀은 어찌나 흐르던지.. 팬티까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오후 4시경 되자 겨우 바닥이 보였다. 우리는 일당 10만원을 받고 목욕비로 2만원을 더 받아서 집에 갔다. 그리고 한 3일간 밖을 나가지 못했다. 냄새가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이 세상에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다.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해낸 훌륭하신 분들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수없이 많은 분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이때 얻었다.

<대충 이런 분위기이다. 마스크는 그냥 일반 마스크였고~>



이상이 내 생애 최고로 힘들었던 알바 3가지이다. 이 외의 것을 언급하자면,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결혼식 피로연 식당 알바, 요즘에는 대부분 뷔페식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전문 케이터링 서비스 업체가 준비하지만 예전에는 지인들이 이 일을 하거나 알바를 고용했다. 이 일은 거의 죽음의 점심시간을 보내게 된다. 허리를 펼 시간이 없다. 정신도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내고 그릇 치우고 다시 상 차리고 그릇 치우가 상 차리고 무한 반복. 그렇게 일하고도 받는 돈은 쥐꼬리~ 


오랜만에 추억으로 남은 빡센 알바를 회상해보았다. 지금은 학생 때 일용직 알바를 했던 것에 비하면 편하고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그렇다. 새삼 삶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알바여~ 파이팅입니다.


이런 글도 함께 읽어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 생에 최악의 일용직 알바 #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