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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20. 2017

겨울의 자취방 - 날마다 혹한기 훈련

동생의 합류와 함께 시작된 추위와의 전쟁

내 자취 생활의 첫겨울을 맞이했다.

겨울이란 계절이 난 아직도 싫다. 자취를 하기 전에는 난 가을과 겨울의 그 시원하고 깨끗한 멋에 겨울을 즐기는 낭만인이었으나 자취를 시작한 이후 3번의 겨울을 나면서 아니 생존해 내면서 차라리 더운 게(몸에서 열이 많이 나는 체질에도 불구하고) 낫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겨울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생존으로써의 계절인 겨울, 그 첫 번째 경험을 맞이하게 되었다.


겨울이 오기 전 나름대로 동절기 준비를 했다. 군대에서 배운 실력을 동원해서 문풍지를 새로 붙이고 창문에는 쫄대를 대고 두꺼운 비닐을 덮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즈음에 둘째 동생이 제대했다. 해병 891기,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2년을 살아남은 놈이다. 막내동생 또한 서해 5도 중 하나인 우도에서 해병 932기로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고 둘째 동생은 군대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경찰공무원 준비를 하겠다며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원래 공부하고는 영 거리가 멀던 녀석이었다. 한 평생 스포츠와 함께 한 녀석이었다. 그런 동생이 공부를 시작한다는 얘기에 적잖이 걱정도 되긴 했지만 단무지 정신으로 하다 보면 뭔 답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에 나의 자취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동안 나는 컴퓨터가 한대 생겼고 책꽂이가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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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오면서 입이 하나 더 생겼으니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 방편으로 제대로 된 취사도구를 들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쌀을 한 포대 들고 왔고 어느 정도의 반찬과 식재료 등 일부를 자취방에 들여놓았다. 나도 군 생활하면서 GP생활을 했기 때문에(이 곳에서는 분대단위로 살았기 때문에 취사장이 따로 있지 않고 부식차가 음식재료를 떨궈주면 우리가 그것을 요리해 먹고사는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요리실력은 자신 있었다. 21살 때 자취하던 내가 아니었다.

[이전 글] 자취생 표 '집밥의 탄생'


참 오랜만에 밥을 짓는 게 즐거웠고 다행히 동생도 훌륭한 취사능력을 배운 뒤여서 먹고사는 것에는 걱정을 하지 않을 뻔했다. 하나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 나는 덩치에 비해 참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이었고(우리 과에서 먹는 양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내 동생은 나보다 4배는 많이 먹었다는 것일 뿐.


동생은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밥을 해 먹었고 단지 밥을 너무 많이 먹었을 뿐이고 반찬은 별로 없었고 그나마 있던 것도 며칠 안되어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오롯이 김치하고만 밥을 먹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어느 순간 쌀조차도 바닥이 났다. 20kg 쌀 한 포대가 보름이 안 가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우리가 보유한 돈은 한계가 있었고 집에서 계속 쌀을 원조받기도 뭔가 꺼림칙하였으며 아무리 일을 계속해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식비로 인해 언제나 돈은 부족했다. 우리 자취방의 엥겔지수가 비정상적으로 그리고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높아져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먹는 것만이 자취인의 유일한 덕목이란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한 달에 10일은 배불렀고 20일은 굶주렸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부터는 우리에게 굶주림보다 무서운 게 추위였다.

매일매일이 혹한기 훈련이었다. 우리 방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할 경우 등유비를 따로 내야 했다. 처음엔 기꺼이 난방비를 지불했지만 보일러가 고장 나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난방비는 그냥 주인아주머니가 먹었을 뿐 보일러는 돌아가지 않았었다) 이내 난방비를 식비로 사용했다. 


시골집에서 전기장판을 가져왔다. 우리와 같이 추운 방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전기장판을 사용하면 장판과 직접적인 접촉이 있는 신체부위만 따뜻함을 느낄 뿐 그 외 신체 부분은 얼음장같이 춥다는 것을 말이다. 이불 위에 서리가 내릴 때도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내부와 외부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 바깥이 곧 내부이고 내부가 곧 바깥인 너무 추운 날은 전기장판의 수치를 최대로 높여도 춥다. 방에 동생이랑 둘이 누워있으면 입에서 입김이 나온다. 그래서 방에서 국을 끓인다. 다소 방에서 음식 냄새는 나겠지만 국을 끓일 때 나오는 수증기의 잠열로 추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건축공학과를 다니고 건축구조와 재료, 시공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건축구조물 내부가 저 눈이 내리는 밤 날씨보다 추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러했다. 이놈의 자취방은 여름에는 외부보다 안이 더웠고 겨울은 바깥보다 안이 추웠다. 

우린 그렇게 생존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하며 버텼다.

따뜻한 봄이 오길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었다.

이 추위가 어서 지나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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