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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23. 2017

이름 모를 강아지를 하늘로 보내다

그 푸른 일요일 자취방에 방문한 아픈 강아지와의 하루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춘삼월이 막 지나가고 있을 즈음이었을 것이다.

동생과의 자취생활이 적응이 아닌 습관이 되어가고 있을 무렵,


난 건축과 학생회장이 되어있었고 동생은 열심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학원에서만.

이 녀석 집에 오면 늘 컴퓨터로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러려고 산 컴퓨터가 아닐 텐데..


아무튼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때는 그즈음이었던 거 같다. 따스한 햇살이 언제 그랬냐는 듯 추위를 물리치고 있었고 연푸른 녹잎들이 살랑살랑 봄바람에 수줍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른한 일요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고 여자친구도 없어서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동생은 여전히 게임 중이다. 가만히 보면 EA GAMES에서는 내 동생에게 상을 줘야 하지 않는 생각이 든다. 이건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무슨 종교활동을 하는 것 같다. 스포츠 게임만이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FIFA와 NBA 게임을 만든 사람들을 노벨상을 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각 게임의 우수함을 나에게도 설파하며 전도하려 든다. 


낮잠을 자던중 슬쩍 잠이 깨 게임을 하고 있는 동생을 한번 바라보았다. 다시 시간을 확인한 후 잠들려 할 때(나에게는 낮잠이라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한번 졸면 아니 자면 3시간 이상은 자줘야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웬만하면 잠들지 않으려 한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이 잠병은 여전했다.) 동생이 모니터에 얼굴을 박은채로 나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 형~ 밖에 개 있어"


우리 동네는 개와 고양이들이 참 많다. 저녁 즈음에는 이 개소리들이 시골의 한적한 모습을 그리듯 울려 퍼진다. 그래서 길 잃은 개가 우리 자취집 안에 와 있나 보다 생각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잠들었다 한 10분 뒤 다시 깨고 나서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갔는데 그제야 조그마한 개가 우리 집 방문 앞에 있는 것을 보았다.

"우현아, 여기 개 있는데?"

"내가 개 있다고 했잖아"

동생이 게임을 하면서 무성의하게 답했다. 


근데 이 개를 가만히 보자 하니 정상이 아니다. 개는 앉아 있지만 거의 눈을 뜨지 못했고(한쪽 눈은 돌출되어 있었다) 몸에는 피부병이 있는지 털이 원형탈모증 환자처럼 군데군데 빠져 있었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파리 두 마리가 저승사자 인양 개 주변을 돌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했나?'

담배를 피우면서 개를 보고 있자니 갈비대가 도드라져 있는 것이 며칠은 굶은 모양이다. 그래서 먹을 것이라도 주면 좀 나을까 싶어서 솔직히 우리도 잘 먹지 못하는 사과를 성큼 잘라서 접시에 담아 개 앞에 두었다. 냄새도 안 맡아본다. 코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역시 우리도 구경하기 힘든 얼마 안 남은 우유를 내놔봤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이 녀석 왜 우리 집 앞에 와 있나? 혹시 우리라면 구해줄 거라 생각했나? 이런 생각이 들자 가만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동생한테 말했다.

"우현아 이거 병원에 데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어디로 가지?"


다행히 근처에 대학교 수의대학이 근처에 있다. 그래도 대학병원이다. 가보자라는 생각에 자전거를 타고 가보자고 했고 무식하게도 처음에는 개를 종이백에 담았다가 개를 죽일 뻔했다. 종이백에 담긴 개는 그때서야 눈을 번쩍 뜨며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고 잘 뛰지도 못하는 게 달려 나갔다. 우리는 집 근처에 버려진 시장바구니 비슷한 거(그렇게 기억한다)를 찾아서 다시 개를 담았다. 그제야 이 녀석도 안정을 찾은 듯하다. 동생이 자전거를 굴리고 나는 뒤에 타서 바구니를 한 손을 들고 수의대학으로 향했다. 일요일이긴 하지만 사람이 있길 바라면서..


한 1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서 수의대학 입구에서 사람을 찾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잠시 기다려보니 흰가운을 입고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동생과 나는 그 녀석을 붙잡고 개를 치료해야 한다고 한번 봐달라고 말했다. 그 녀석은 적잖이 당혹해하더니 바구니에 담긴(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개를 보더니 하는 말이

"어휴, 이거 심각하네. 왜 그랬어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에 동생이 굵은 목소리로 녀석에게 말한다.

"여기서 치료할 수 있죠?"


그러자 그 녀석은 동생을 보고 놀랐는지(난 그렇게 느꼈다) 뒷걸음치면서

"아... 전 여기 학생이고요... 지금은 일요일이라 선생님들이 없는데.... 근처 동물병원에 가보세요"


' 아~~ 놔... 여긴 동물병원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동생이 폭발했다

"아 씨발. 개가 죽을 거 같으니까 빨리 어떻게 해봐!!"

이 녀석 쫄았다. 

저렇게 생긴 놈이 소리를 치면 부처라도 쫄 것이다.

"잠시만요.."

하면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한 10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그 녀석과 다른 한 사람이 나온다. 이번에 나온 사람은 외모로 보나 그 녀석이 주저리주저리 보고 하는 것을 보나 교수가 분명했다. 동생과 나는 그 둘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교수처럼 생기신 분은 우리를 보고 우리 앞에 있는 개를 보자 다시 고개를 휙 돌리고 그 가운 입은 녀석에게 뭐라고 하더니 앞에 있는 차를 타고 가버렸다. 그 가운 입은 놈은 차를 향해 90도 인사를 하고 건물 옆으로 사라져 버렸다.

'씨발...'

"이런 @#※&ㅗ쉐끼들.." 동생은 이렇게 외쳤다. 


동생하고 나는 근처 동물병원을 찾아보기로 하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한 2~30분을 돌아다니다 동물병원 하나를 발견하고(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진료를 부탁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개를 진료대에 눕히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영양실조에다 피부병도 심하게 있고요... 안구돌출도 보이고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아요. 외관상으로는 교통사고가 있었던 거 같은데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폐에 피가 찼을 가능성이 높아요.. 문제는 코에서 흐르는 피인데.. 양 콧구멍에서 다 흐르는 것을 보면 이미 상황은 늦은 거 같아요.."

하시면 뒷 말을 흐렸다.


그래도 병원에 오면 수술 같은 거 하면 고칠 거라 믿었다. 우리도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다시 덧붙이시는 말이.

"정확한 것은 검사를 해봐야 해요.. 그런데 본인들 개도 아니면서 제가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을 못하겠네요. 검사비만 11만원이 들어갈 거고요. 검사해서 원인을 안다고 해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여서요.."

11만원이면 당시 우리에겐 큰돈이었다. 거의 한 달 생활비와 맞먹는 돈이었다. 

"잠시만요 동생하고 상의 좀 할게요."

동생을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서로 말없이 담배를 물었다.

"어떡할까? 검사나 해보자."

동생은 말없이 담배를 쭉 빨더니,

"어차피 가망없다잖아... 나도 살리면 좋은데.."

우리는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그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선생님... 그럼 안락사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답했다.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 강아지도 두 분을 이해할 거예요.. 동물을 아끼는 두 분의 모습을 보니 제가 다 좋네요.. 안락사 비용은 무료로 해드릴게요"

우리는 그러기로 했다. 


다시 개가 있는 진료대로 갔다. 개는 조용히 누워있었다. 아무 반항도 없었다. 다리에 고무줄을 묶을 때도 주삿바늘이 다리에 들어갈 때도 조용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주사약이 다 들어갈 즈음 강아지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빠르고도 고요했다.


축 늘어진 강아지를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레 종이 같은 것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는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한 후에 나와 다시 집으로 페달을 굴렸다. 오면서 우리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돌아온 뒤 삽을 구해서 집 뒤 야산에 올라 나름 양지바른 곳을 찾아 묻어주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그 야산에서 조그마한 무덤을 만들고 난 뒤 동생이 그랬다.

"형. 아까 개 죽기 전에 날 한참 쳐다보더라고....."


동생은 동물을 무지하게 아낀다. 인간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 가끔 티브이에서 밀렵꾼의 얘기들이 나오면 광분을 하고 나 저런 사람들 잡는데서 일하고 싶어.라고 말하곤 했다. 예전에 시골집에서 애완견을 키웠었는데 그 개가 급성빈혈인가 영양실조인가로 죽었었다. 개가 숨이 넘어가는 순간 그 밤에 자기가 안고 있었는데 그 개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던 애였다. 그리고 그 눈발이 날리던 새벽 손으로 땅을 파서 그 애완견을 묻어주던 애였다. 그런 동생이 다시 한번 강아지의 죽음을 자신의 눈앞에서 목도했다. 

"그래도 고통은 이제 없을 거다"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요하고 푸른 일요일은 어느덧 석양이 지고 있었다. 살랑살랑 수줍은 춤을 추고 있던 투명한 푸른 잎들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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