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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24. 2017

2003년 태풍 '매미'가 남긴 상흔

자취방 지붕이 부서졌다.

2002년 태풍 '루사'때는 우리지역에 큰 피해없이 그냥 지나갔었다.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치긴 했지만 우리 지역에는 평소보다 좀 강력한 태풍이였을 뿐 체감으로 느껴지는 파워는 아니였다. 


그리고 2003년 9월 12일 태풍 '매미'가 상륙하게 된다. 특히 이 태풍은 그 강력함도 최고였지만 우리나라가 직접적으로 위험반구에 들어가는 상황이라서 언론에서 크게 보도를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자취방에는 티브이가 없어서 진행상황에 대해 뉴스를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하였지만 낮부터 지속된 보도에 대충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태풍 '매미'는 제주지역을 박살내고 있었고 여수 및 남도해 지역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 날, 동생과 나는 매서운 비바람에 일찍 집을 들어왔다. 바람이 크게 불면 집전체가 흔들흔들 거렸었지만 설마 태풍에 집이 날아가기야 하겠냐라는 생각으로 저녁을 먹고 동생은 게임을 했고 - 역시 EA GAMES -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태풍 '매미'가 오기전 이미 장마철이 한차례 지나갔었던 차라 잦은 비로 인해 우리집 지붕에는 비가 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양이 미약하여 천정이 젖어드는 곳을 달력종이로 붙여서 잠자리에 물이 떨어지지 않게끔 조치해놨더니 장마가 끝나고 더이상은 비가 새지 않았었다. 


<2003년 9월 12일 오후 5시 '태풍 매미' 상륙 3시간전>


태풍 '매미'가 상륙하던 그 날 밤.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거세졌다. 살짝 걱정이 될만큼 큰 비바람이였다. 우리 탐욕꾸러기 뚱뚱보 주인장 아주머니도 근처 다른 마을로 보내버릴 수 있을것만 같았다.(사실 그랬으면 난 하늘에 감사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아마 태풍이 상륙을 시작했었을 때이다. 12시가 다 되어 갈무렵 잠들기가 무서울 만큼 매서운 바람이 전 국토를 휘젓고 있을 무렵 이제는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불을 깔려고 준비를 했다. 바람소리는 지옥의 악마가 부활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치루는 것처럼 살벌했고 비는 하늘에 구멍이 뚤린듯 쏟아붇고 있었다. 집은 점점 더 흔들렸다.(이런 흔들림에도 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을 보면 최신 내진공법으로 설계가 된 것같다라고 생각하며 살포시 웃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친놈이다) 


내가 이불을 깔려는 그 순간,

'우직끈'

내 눈앞에서 검은색 용 한마리가 방바닥으로 추락하는 형상을 보았다. 그건 분명 용이였다.

0.02초가 흐른뒤

그건 용이 아니라 천정에 구멍이 뚤려 지붕 내부의 썩은물이 우리가 달력종이로 붙여놓은 그 곳에서 쏟아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컴퓨터를 하던 동생과 나는 한동안 그걸 보고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광풍소리도 그 순간만은 정적을 이루었다.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3초가 지난뒤,


"우이이 쒸~~~~발!!"


서둘러 이불을 빼내고 사태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바람으로 인해 슬레이트 지붕이 균열이 생겼고 거기에서 비가 샌것이 싸구려 합판으로 만든 천정에 물이 고여 평소 비가 새던 그 곳으로 지름 20~25Cm의 구멍을 내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천정에 고인 물을 다 쏟아낸 후 방청소를 하고 임시방편으로 이리저리 비닐을 구해와서 천정을 막았다. 그 아래는 우리가 평소 잠을 자던 곳이다. 누워봤으나 얼굴 바로 위로 그 구멍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날 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태풍 매미가 지나간 우리 ㅇㅎ마을은 전쟁터를 연상시킬 만큼 황폐화되었으며 우리집 천정에는 계속해서 비가 고이고 있었다. 다음날 비가 소강상태가 되어갈 무렵 주인장 아주머니께 사실을 보고 드렸다. 


탐욕꾸러기 뚱뚱보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하는 말은 자취 첫 날, 개미가 출몰했을 때와 문장 구성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원래 비가 자주 새~~ 우리집도 비 새~~"

담배를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

[이전 글]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다시 시작한 자취생활 그리고 개미 출몰 사건


그날 주인장 아저씨가 보수를 하시러 지붕에 올라갔지만 밤에 돌아와서 들은 답은

"여기 보수가 안될 것 같으니까 저기 앞방으로 이사해~"


그리하여 우리는 앞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사실 그방이 좀 더 좋은 방이다. 주방과 세면장도 훨씬 컸으며 방도 좀더 컸다. 무엇보다도 조그마한 마루가 있어 좋았다. 다만 창문이 인근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남향집이 되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원래 그방은 12만원짜린데 특별히 10만원에 해준다는 자비어린 말씀을 곁들여 주셨다.


'아우 씨발, 감사하네요, 겁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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