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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30. 2017

집에 '마귀'가 나타났다.

마귀를 닮은 거대 메뚜기와의 전투

때는 2003년 여름과 가을 사이 어느 날. 토요일로 기억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동생과 외출을 했다가 밥을 먹으려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이 자취방은 전편에서 얘기했듯이 태풍 매미로 인해 지붕에 구멍이 뚫린 보수 불가한 방 대신 새롭게 얻은 널찍한 방이다.

[이전 글] 2003년 태풍 '매미'가 남긴 상흔


밖에서 놀거나 학교에서 있거나 외출을 하더라도 그 당시는 반드시 밥을 먹으려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밖에서 식당밥(제일 싼 것이 2,500원 밥이었다.)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사치였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쌀을 주식으로 하여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마른반찬 1~2가지(멸치볶음류), 그리고 김치... 그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를 뱃속으로 밀어 넣는 작업을 우리는 '식사'라 칭한다. 그 화창한 가을날에 우리 둘은 자취방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돌아왔으며 방에다가 가방을 던져놓고 방 옆에 붙어있는 샤워장 겸 주방으로 향했다. 

샤워장 겸 주방이라고 말한 것은 그 공간이 기다란 형태의 공간이고(전기불은 백열전구 하나에 의지하고 있지만) 수도꼭지가 하나 있으며 그곳에 세숫대야와 세면도구들이 있기에 샤워장이라 한 것이고 그 맞은편 벽에 냉장고가 있고 조리가 가능한 도마가 있으며 밥그릇이 있고 끓일 수 있는 부스타가 있기 때문에 주방이라 한 것이다. 그렇다 도시가스 따위는 없는 것이다. 한 개에 800~900원 하던 부탄가스를 사서 쌓아놓는 것이다. 


냉장고는 샤워장 겸 주방의 문을 열면 입구에 바로 위치하여 있다. 일단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샤워장 겸 주방' 문을 열어 놓은 채로 냉장고를 열어 물통을 꺼내려고 하였다. 

그 순간, 

머리통 위에서 알 수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물통을 집어 들기 전에 그 살기가 느껴지는 곳을 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냉장고 위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냉장고 문을 닫고 주방 문을 차례로 닫았다. 뒤에 서 있던 동생을 바라보았다. 내 동생은 알쏭달쏭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고 난 동생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우현아... 여기에 마귀 있다."


그것을 처음 본 느낌은 마귀였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던 그 큰 눈, 상식을 벗어나는 크기, 너무나 거대해 그 턱과 입 주변의 털들이 디테일하게 보일 정도였던 그것의 정체는 메뚜기였다.

그게 마귀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이 되질 않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메뚜기를 잡았었지만 그렇게 큰 메뚜기는 본 적이 없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메뚜기를 본 적이 있는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말라. 그것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적에는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아마도 마귀가 메뚜기의 탈을 쓰고 현실에 등장했다는 설명을 나는 믿었을 것이라. 


이 마귀가 왜 보잘것없는 나의 집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천사장 미가엘로 빙의하여 성령의 이름으로 저 마귀를 무찌르고자 하였다. 


나는 그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는 재빨리 빗자루를 들었다.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마귀를 응징하리라..라는 다짐과 함께..

동생과 함께 주방문을 조용히 열었다.


이 마귀 새끼 아직 냉장고를 점령하고 앉아 있었다. 처단하기 좋은 자리를 골라 선 다음에 한방에 보내자는 생각에 조심스레 빗자루를 들고 조준을 하였다. 동생도 마귀를 보고서는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동생의 굳게 닫힌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빗자루를 마귀 방향으로 조준하고 내려칠 준비를 마쳤다.


하나, 둘, 셋!!


셋이란 소리와 함께 죽을힘을 다해 빗자루를 내리쳤다. 흡사 이 한방에 저것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랄까.. 그 마귀는 정통으로 나의 슈퍼 울트라 캡숑 에볼라 빗자루 검법을 맞았다. 하지만, 직각으로 내려치지 못하고 살짝 각도를 주어 내리쳐서일까? 그 마귀는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방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곤 뛴다.


그때 느꼈던 공포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동생과 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동생과 나는 재빨리 그 무시무시한 마귀를 잡으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혼신의 스매싱!!

공포 그 자체였다. 

그 큰 것이 뛰는 것도 무서웠지만 그렇게 처맞고도 죽지를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무서웠다.

이번에는 뒷다리 하나만 떨어져 나갔다. 그 다리가 내 손가락 만했다. 

마귀는 이제 뛰는 힘이 약해졌다. 도망가는 마귀를 뒤쫓아 내 모든 영혼을 불살라 패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나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마귀는 드디어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성령의 힘이 깃든 빗자루로 내리쳤는데도 몸이 철갑을 두른 듯 으깨지지도 않았다. 그냥 죽었다.


이 ㅇㅎ마을은 도대체 어떤 에너지가 흐르길래 곤충들이 백악기 시대 공룡과도 같은가..

자취 첫날 개미 사건에 이어 이 마귀 사건은 내 인생의 전설이 되었다.

가끔 나중에 자취에 합류한 막내에게 둘째와 나는 말한다.


"너.. 마귀 아냐?"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곤충과 파충류와의 전투' 관련 글]

▶ 2002년 월드컵과 함께 다시 시작한 자취생활 그리고 개미 출몰 사건

▶ 베트남에서 도마뱀과의 결투, 그 상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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