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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Feb 04. 2017

전기장판 하나로 버텨냈던 혹한

자취방은 언제나 춥다.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다 보니 어느덧 또다시 겨울이 도래했던 2003년 4/4분기. 

작년 겨울의 경험을 소중히 여겨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해 나와 동생이 취했던 노력이나 행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 글] 겨울의 자취방 - 날마다 혹한기 훈련


중요한 것은 태풍 매미로 인해 지붕이 무너져 어쩔 수 없이 앞 방으로 이사 온 방은 작년보다 더 추웠다는 사실이다. 참 신기한 집이었다. 장마철 기간에도 천둥, 번개가 치던 날에는 집이 흔들리는 것을 느껴졌다. 우르르쾅쾅하는 소리만으로 집 한 채가 이렇게 진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혹시나 이 자취방이 지진 같은 횡파에 견딜 수 있는 내진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자체 흔들림을 통해 횡파동을 흡수하는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또다시 추운 겨울이 왔고 우리는 거기에 대한 대비책으로 전기장판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취방은 월 10만원이지만 따로 전기세, 수도세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혹여나 주인아주머니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전기제품을 사용하는지 가끔씩 검열을 하시고는 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기제품은 냉장고, 컴퓨터, '테이프 재생과 라디오만 가능한' 엄청나게 큰 오디오, 전기장판 이 정도였을 뿐이다. 우리는 전기장판이 의외로 전기요금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 집에서도 주로 전기장판을 썼는데 하루 종일 써도 생각보다 많은 전기요금이 부과되지 않았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믿었다. 냉장고, 컴퓨터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 건 전기요금 세계에서는 먼지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 해 겨울은 또 왜 그리도 추웠는지... 집에 들어오면 전기장판 온도를 최대로 올려놓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역시나 장판이 닿는 신체부위는 뜨거워 데일 지경이었지만 장판에서 10센티만 떨어진 곳은 냉기가 엄습했다. 가끔 바닥의 전기장판이 가동되고 있는 상태에서 이불 위에 서리가 내리기도 한 신비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전기장판을 벗어나 방바닥을 걸을 적이라면 발바닥이 얼어붙을 지경이어서 종종걸음을 걷거나 아예 양말을 신고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말을 신고 생활하는 것은 나에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집에 오면 무조건 양말을 벗어놓고 생활해야 하는데 방안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는 고통을 늘 겪었다. 흡사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맨발로 오를 적에 발바닥이 뾰족한 돌에 찍히면서 느끼는 고통에 견주어 볼 수 있을까? 나와 동생은 매일 인류의 생명을 대신하여 죽은 예수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사실은 바깥보다 실내가 더 추웠다. 그나마 실내는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컴퓨터를 하다가 우연하게 엄청나게 재밌는 게임을 발견하고 어둠의 경로를 통해 다운받은 적이 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Call of Duty' 


<Call of Duty 1>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연상케 하는 이 밀리터리 슈팅게임은 동생과 나의 영혼 밑바닥까지 사로잡았다. 집에 있을 적에는 서로 돌아가며 이 게임을 줄창 해대고는 했다. 엔딩 화면을 보는 그날까지.

문제는 이게임을 할 때가 이 겨울이었다는 것이었지..

컴퓨터가 위치한 장소와 취침 장소(전기장판이 깔려 있는 곳)는 서로 반대쪽 벽에 붙어있었다. 그래서 게임을 할 때는 컴퓨터 앞에 앉고 기다리는 사람은 전기장판에 쏙 들어가 있었다. 그 추운 겨울에 냉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자니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임의 배경이 겨울 러시아라면 실제로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게임 속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손은 얼어붙어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시렸으며 발바닥은 동상이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게임을 해보겠다고 동생과 나는 마우스를 멈출 때마다 입김을 불어 손을 녹였으며 의자에 놓았던 방석을 발 덮개로 사용하였고 따뜻한 이불속에서도 얼른 내가 할 차례가 왔으면 하고 바랬으니 참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지금도 그럴 것 같다.


내 동생이 이게임을 참 잘했다. 이때는 콜 오브 듀티 초창기 시리즈인데 동생이 게임하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가 막혔다. 특히, 스나이퍼 미션에서는 손가락에 신들린 놈처럼(아마 게임을 하는 중에 신이 내려 손가락으로 작두도 탔을 것이다.) 원샷 원킬이었다. 


조금 더 따뜻한 집에서 게임을 했더라면 내 동생은 더 저 게임을 잘 했을 텐데 하며 눈물 짓.. 기는 개뿔 저 녀석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런지 싶었다. 눈도 무지하게 많이 내렸고 추워도 그렇게 추울 수가 없던 그 해 겨울을 그렇게도 무식하게 견뎌내고 있었다.(이사 가면 되는데...)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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