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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Feb 12. 2017

전기세 공방전 후 집을 옮기다

주인아주머니와의 전기세 전투 그리고 눈 내리는 날의 이사

너무 추워 부엌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판단되어 방안에서 주로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전기 버너를 사용했다. 사실 이때도 이 제품이 전기 먹는 하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추운 날에만 조금씩 사용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몇 번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탐욕 꾸러기 주인장 아주머니가 또다시 검열을 하기 시작하셨다.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 다른 전열기구를 사용하는지 아닌지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는 검열 중에 우리에게 하소연을 하신다.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 돈을 더 걷어야 할 거 같애~~ 전기 히타 몰래 쓰는 거 아녀?"


처음에 이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난 농담일 거니 생각했다. 이런 이글루 같은 집의 월세를 10만원 주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전기세를 따로 또 받겠다는 말을 하는 주인아주머니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건 범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다음 달에도 검열을 몇 번 나오셨다. 내가 학교 가고 없었을 때 동생이 집에 있으면서 몇 번 당한 모양이다. 집에 오면 동생이 탐욕 꾸러기의 말을 전해주었다. 난 결사항쟁을 할 각오로 절대 전기세를 주지 않기로 다짐했고 전기 버너를 아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그 날.... (기억하기로는 2003년 12월 20~21일 정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집에 있을 때 또 검열을 나오셔서 전기세를 2~3만원 받아야겠다고 나에게 선전포고를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전면전의 때가 왔다는 판단이 들었고 각종 데이터와 논리를 내세워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 자취방은 1개의 계량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각 자취방 별로 차등을 둘 수 없었다. 이게 어떨 때는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분쟁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다가구 방을 구할 때에는 계량기의 1실 1개의 원칙을 지키는 방을 구하는 것이 좋다. 분쟁을 없애기 위해서다. (아주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될 막내동생의 자취방을 구하러 다닐 때에도 이 계량기 문제는 항상 확인하고 그다음에 방의 상태를 보았다.)



나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전기세 투쟁을 벌였고 아주머니도 극도로 흥분상태가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옆방(남자가 셋 살던 방)에서 전기난로가 발견되면서 누명은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래도 전기세는 받아야겠다고 물러서지 않으셨다. 동생이 잠시 외출한 사이 아주머니와 나의 막바지 전쟁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극도로 흥분하여 집에 있던 목검을 들고 대화(?)에 임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 왜? 그걸로 나 때릴라고? 응? 때릴라고?"

 "안 때려요!! 네!! 그리고 내가 이 집을 나가더라도 그 전기요금은 못 드려요!!"


사실 마음은 때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2,3만원은 나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물러나면 앞으로도 여러 번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 날 대립을 끝낸 후 잠시 학교에 다녀오니 동생이 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말하길, 내가 목검으로 때리려고 그랬다고 내 동생에게 아주머니가 일렀던 모양이다. 


우리는 나가기로 결심했다.


역시 그날 둘째 동생이 ㅇㅎ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취방 할 만한 곳을 구한 모양이다. 밤에 오더니 주인아주머니 좋으신 분 있는데 방을 봐 두었다고 했다. 방도 괜찮다고 그러면서... 

동생과 함께 그 방을 보러 갔다. 살고 있었던 자취방은 마을 입구 첫 집이었다면 새로 봐 둔 방은 마을 깊숙하게 자리 잡은 곳이다. 현재 위치에서도 10여분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학교에서 좀 멀어지는 게 맘에 걸렸고 방안에 싱크대가 같이 있었던 게 싫기는 했지만 일단 주인아주머니가 좋아 보였고 얼른 지금 있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바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아주머니와 인사도 하지 않고 우리는 짐을 쌌다. 냉장고, 컴퓨터, 이불, 책, 기타 등등(살림살이도 참 많아졌다.)을 옮기는 데 사용한 운송기구는 자전거.. 짐을 바리바리 보자기에 싸고 가방에 싸고, 박스에 넣고 해서 자전거에 의지해서 동생과 나는 이삿짐을 옮겼다. 


거의 하루가 꼬박 걸렸던 것 같다. 동생과 양손에 짐을 들고 자전거에 짐을 올린 채로 몇 번씩 짐을 옮기는 중에 왜 그리도 눈은 무심하게 내리는지 손은 꽁꽁 얼었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에 자전거는 미끄러웠으며 알 수 없는 슬픔이 목구멍으로 자꾸 넘어왔다. 새로운 방이 결코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추운 날 이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설움을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함께 길바닥에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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