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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Mar 07. 2017

가난한 자취인이 머리감기가 무서운 이유

머리통이 줄어드는 고통을 아시나요?

탐욕꾸러기 전 집주인 아주머니와 전기요금 전쟁으로 인해(참고글 : 전기세 공방전 후 집을 옮기다) 우리 둘은 마을 깊숙이 들어가야만 했다. 왠지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던 눈이 내리는 그 날, 이사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자취 2년 차가 되어가지만 삶은 점점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과연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가, 우리에게 따스한 보일러가 장착된 자연채광이 가능한 원룸에서의 생활은 내 생전에 가능한가 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사를 하는 그날, 탐욕꾸러기 주인장은 우리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면서 어디 내가 잘 사는지 보겠어!!"


이런 저주 어린 말을 들으면서도 왠지 행복해졌다. 아.. 이 집을 드디어 나가는구나. 최소한 지금 가는 집은 지붕에 구멍이 나진 않겠지.. 천둥이 치면 집이 흔들리진 않겠지.. 집 벽체의 열전도율이 이 집보단 낮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주머니께 말했다.

 "네.. 잘 살께요" (물론 속으로만 말했다. 열 받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아서)


새로 이사 간 집은 약간 긴 형태의 방으로 전에 있던 방보단 컸으며 출입구 한편에 조그만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어 실내에서 조리 및 설거지가 가능했다. 창이 없어 채광은 전에 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개인 세면 장소는 제공되지 않았다. 공동 샤워장이 있었으며 그 안에 세탁기까지 자리를 잡고 있어 가끔 다른 자취인들과의 공동이용에 불편함이 있었고 화장실 또한 위생적이지도 편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 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진 정글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개미가 나오지도 않았으며(관련글 : Reloaded) 콘크리트 지붕이라 비가 새지도 않았고(관련글 : 태풍 '매미'가 남긴 상흔) 마귀도 없었다.(관련글 : 집에 '마귀'가 나타났다) 주인아주머니는 '착할 善' 자를 이마에 쓰고 다니셨으며 구멍가게와의 위치도 약간은 가까워졌다. 


이런 방을 구해낸 둘째 동생의 노고를 치하하며 새로운 방으로 우리는 당당히 입성했다. 여기 방값은 11만원이였다. 이전 방보다 만원이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우리가 조금만 아껴 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기에 고민도 하지 않았다. 


추후 다시 얘기하겠지만 여기서의 생활은 몇 개월 하지 않았지만 그 삶이 절대 녹록지 않았다. 내 자취생활의 최악의 상황이 바로 이 곳에서 몇 개월내에 발생하게 된다. 최악의 굶주림을 이곳에서 맛보게 되었다.


이 곳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서야 비로소 깨달은 일이지만 여기는 온수가 제공되지 않는다. 공동 샤워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온수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일정액의 돈을 내고 자신이 쓰고 싶을 때 보일러를 가동하여 온수를 이용하고 세면 및 샤워 등 일을 다 보면 꺼버리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냉수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당연히 온수를 얻기 위해 돈을 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제멋대로 뻗쳐지기 때문에 외출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머리를 감고 젤을 발라줘야 한다. 나는 잠을 잘 때, 반듯하게 누워서 잘 것이라 생각했으나 아침에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형상을 볼 때, 그런 믿음에 의구심이 살짝 들긴 했다. 아마도 누군가 내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자는 도중 심하게 발작을 일으키며 이불을 혼자서 돌돌 마는 습성을 가졌다고 거품을 물면서 토로한다. 내 둘째 동생의 잠버릇은 이를 심하게 갈면서 잔다. 전생에 비버라도 되었는지 현재 자란 치아를 모두 갈아 마셔버리겠다는 의지로 갈아댄다. 그래서인지 턱관절이 안 좋다. 나중에 등장할 막내동생의 잠버릇은 심하게 잠꼬대를 한다. 자면서 늘 대화를 한다. 웃기도 한다. 욕도 한다. 


이사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상쾌한 마음으로 아무도 밟지 않는 마당에 쌓인 눈을 즈려밟으며 샤워장으로 향했다. 샤워장에는 수도꼭지가 두 개 있는데 그 아래 물을 담아놓은 커다란 고무대야가 있다. 그 대야에 담긴 물이 얼어있는 것을 보았다. 얼음 아래는 아직 얼지 않는 물이 있었다. 얼음을 살포시 깼다. 아.. 겨울이지..라는 생각과 혹여나 온수가 나올까 하고 물을 틀어봤지만 10분이 지나도록 미지근한 물도 나오지 않았다. 

 "에이씨~~"

그리고 빨리 씻고 나가자라는 어리석은 생각과 함께 대야에 손을 담갔는데 꽤 차가웠다.(사실 이때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리고 바가지에 물을 퍼서 머리에 쏟아부었다. 응? 의외로 차갑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바가지......를....... 부었ㅇ....

 "으악~~!!!"

내 생전 그런 고통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머리통이 주먹만 하게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흡사 거대한 압출 장치에 머리를 집어넣은 느낌이다. 아니 거기에 머리를 안 집어넣어도 알 수 있다 압출 장치에 머리를 집어넣으면 어떠한 고통이 오는지를...

물 한 바가지를 머리에 부어 넣고 수차례 비명을 질러댔다. 

비명을 지르지 않고서는 그 상황을 아무리 히말라야의 중턱 즈음에서 평생을 묵언 수행하는 - 가시방석에서 잠을 자는 - 고승이라도 견뎌내지 못했으리라. 


단지 물 두 바가지를 부었을 뿐인데...

몇 번 비명을 지르자 이젠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헤헤헤헤 해!!!!!!!!"

알 수 없는 방언도 튀어나왔다.


머리감기를 포기했다.

두 번 다시 맛보기 싫은 고통이다.

방에 들어가서 동생을 붙잡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울부짖기만 할 뿐이었다. 동생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샤워장으로 향했다. 1분 있다가 내가 질렀던 비명소리가 똑같이 들려왔다.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동생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생활이 매일 반복되었다. 대가리가 줄어드는 고통은 절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기 전 심호흡을 하게 된다. 여기서 배운 것은

 '첫 바가지에는 고통이 없으나, 이 현상이 두 번째 바가지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같이 첫 바가지의 훼이크에 속고 만다.

인간은 어리석고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는데

자취인은 가난하고 늘 찬 물로 머리를 감는다.라는 말로 대체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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